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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여행의 마지막 날

아쉬움을 남겨두어야 또 오겠죠?

by 지마음




마지막 날 저녁,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던 제 모습을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멋진 그림으로 남겨주셨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꼈지만 저는 제 뒷모습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앞모습 보다 예뻐서이기도 하지만 뒷모습에 담긴 감정들을 떠올릴 때 여행의 순간들을 더 잘 기억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여행이 지난 후에 보니 정말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더라고요. 삶의 힘든 순간마다 사진을 꺼내보며 그때를 추억하고 웃음 짓고 또다시 현실을 힘내서 살아갈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 사진을 많이 남겨주신 지노그림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ㅎㅎ


결코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열다섯째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럼 아쉬움이 가득 담긴 마지막 날의 여행기를 시작해 볼게요.



호텔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체크아웃을 마치고, 프런트에 짐을 맡겼습니다. 공항에 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에요. 저희는 마지막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보기로 했어요. 첫 목적지는 어제 가지 못했던 카페 뮤지엄이었습니다. 이곳은 1899년에 생긴 카페인데요. 무려 100년이 넘은 전통이 있는 곳! 아인슈타인과 유명한 화가 클림튼이 실제 자주 방문했던 카페라고 합니다. 빨간 의자가 아주 인상 깊었던 내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었어요.



저희는 커피와 함께 이곳에서 브런치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해외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팬케이크와 굴라쉬, 브런치세트를 주문했죠. 아이스커피도 함께 주문했습니다. 카페 뮤지엄은 좌석 간격이 넓어서 브런치를 즐기기에 좋았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줄 서야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도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 평소보다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저희는 가고 싶었던 미술전시를 보기 위해 벨베데레 궁전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벨베데레 궁전은 아주 넓은데요. (이 나라는 뭐든 넓고 큽니다. 체력을 많이 비축해서 가야 해요.ㅎㅎ 그늘이 많이 없다는 것도 참고하셔서 선글라스 필수!) 이 궁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궁전의 내부는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미리 예매를 하지 않은 관계로 지노그림 작가님은 줄을 서서 티켓을 구입하고, 저는 그 옆에 있는 기념품샵에서 기념품을 구경하고, 지금사진 작가님은 야외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제 각자 잘 놀아요. ㅎㅎ



궁전 안을 미술관으로 사용 중이라 그런지 시간마다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수가 제한되어 있고요. 시간마다 입장 티켓을 판매 중입니다. 그래서 야외를 많이 구경하지 못하고 빨리 들어가야 했어요. 지금사진 작가님과 저는 밖에서 사진을 찍고 구경하느라 딴짓을 하고, 마음이 급한 지노그림 작가님은 저희 둘을 빠르게 데리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ㅎㅎㅎ (이럴 때, 안 맞아. 안 맞아.)



미술관 안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클림트의 키스, 그 외에도 클림트의 작품들과 에곤쉴레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조각 작품들도 있고요. 클림트와 에곤쉴레 모두 제가 좋아하는 화가들이라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미술관 내부에 사람이 많았지만 제한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붐비지 않았고,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었어요.



미술관 안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궁전을 찍은 모습입니다. 이날 날씨가 너무 좋았고, 아주 조금이지만 지금사진 작가님께 배운 사진 찍는 법을 연습해 보면서 열심히 찍었어요. 사실 구름이 다 했다...ㅎㅎㅎ 이 사진의 색감만 보면 절로 미소가 그려졌기에 공유해 봅니다.



미술관은 1층, 2층, 3층까지 있는데요. 저희는 다 꼼꼼히 보지는 않았고 보고 싶은 작품들 위주로 관람하고, 마지막에 전시된 사진 전시를 조금 길게 봤던 것 같아요. 주제가 색달랐고 느낌도 오묘해서 메시지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아쉽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라 찍어오지 못했어요. 시간이 조금 여유 있었다면 더 여유롭게, 자유로이 관람했을 텐데 다시 짐을 찾아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찬찬히 관람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곧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가득 끼었었는데요.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저희는 가볍게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와 물을 마시고 짐을 맡겨둔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이제 정말 비엔나의 관광지는 안녕...



호텔에서 짐을 찾아 나와 중앙역으로 갔습니다. 중앙역에서 공항까지 바로 가는 열차가 있어서 저희는 티켓을 따로 구매해서 열차를 탑승! 25분 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비엔나 공항이 있었습니다. 다른 도시들은 도심과 공항이 멀었는데 비엔나는 가까운 것 같아요. 유럽에 오면 한 번은 꼭 열차를 탔었는데 이번에는 못 타고 가는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마지막 날 열차를 탑승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열차가 주는 특별한 느낌이 있는데 그 느낌을 제가 좋아하나 봐요.ㅎㅎㅎ



국제공항이지만 생각보다 작은 비엔나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쳤습니다. 세상에나... 가방 무게가 초과해서 저와 지금사진 작가님은 마일리지로 추가금액을 결제했고요. 대한항공에서 연착된 것에 대해 바우처를 줬는데 그것으로 간단한 샐러드와 요기, 맥주를 사 먹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안 먹을 수가 없었어요. 무엇보다 이 바우처는 여기서만 쓸 수 있어서 무조건 먹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유럽의 마지막 맥주를 마시며 떠나기 전의 알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여 급격히 말이 없어졌습니다.



탑승을 기다리며 찍은 비행기입니다. 곧 저희가 탑승하게 될 비행기였는데요. 저는 항상 비행기를 타기 전에 이 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곤 하는데 그때의 감정들이 매번 다른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정말 눈물이 뚝뚝 흐를 만큼 슬프기도 했고, 어떤 날엔 후련하기도 했고, 어떤 날엔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의 여러 상황에 따라 제 감정이 반응한 것이겠지만 '비행기'가 주는 떠남에 대한 생각들이 더 극대화되는 장소가 바로 이곳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한항공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비빔밥을 주었어요. 낙지 비빔밥이었던 것 같은데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엔 들지 않았던 의문이 들더라고요. 한국에 도착하면 한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왜 꼭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비빔밥을 주는 것일까요?ㅎㅎ 오히려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에서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화이트와인과 함께 맛있게 먹고 잠이 들고 싶었는데 잠이 안 와서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봤지만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 공조 2를 시청하기 시작. 비행기 안의 불도 다 꺼지고, 사람들도 전부 자는데... 왜 나만 잠에 들지 못하니. 비행기에서 푹 잤어야 하는데 이로써 시차적응 대실패... 이리저리 불편한 몸을 움직여가며 영화를 보다 휴대폰에 메모를 하다, 뒤척뒤척...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한국 도착 2시간 정도 남았을 때, 과일과 오믈렛이 나왔고요. 저는 과일과 요구르트만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제 거의 도착할 시간이라 맥주나 와인은 마시지 않았어요. 거의 뜬 눈으로 비행을 했던 저는 이 오믈렛을 먹고 나서야 조금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역시 장거리 비행 전에는 꼭 밤을 새우고 타야 한다는 거...ㅎㅎㅎ



드디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수화물을 기다리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그새 해외생활이 적응이 됐는지 빨리빨리 진행되는 한국 상황들이 낯설기도 했고요. 이제 짐을 찾아서 게이트 밖으로 나가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 제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습니다. 무엇인가 꿈을 꾼 것 같은 여행이었어요. (사실 모든 여행이 그렇지 않나요?)



우리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끊어두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공항에서 그렇게 그립던 한국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아주 반갑게 먹어봅니다. 긴 비행에 지쳐서이기도 하지만 이제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무게 때문인지 우리를 많은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 한 가지 약속은 했죠. 조만간 사가지고 온 와인을 마시고 뒤풀이도 할 겸 다시 만나자고요.ㅎㅎ 그리고 내년엔 어디로 갈 건지 이야기해 보자는 대화와 함께 각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족과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여행하기는 힘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15박 16일을 붙어서 여행한다는 것은 웬만한 인연이 아니고서야 아주 어려운 일이죠.ㅎㅎ 그만큼 정도 들어버린 것 같고요. 그래서 그런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또 열심히 살아야 다시 모일 수 있으니까요. 우당탕탕 정신없을 것 같았던 이번 여행은 다툼도, 트러블도 없이 무탈하게 잘 끝이 났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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