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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마음 Feb 28. 2023

할머니의 껌

두 개 오천 원


보통의 날과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껌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날도 추운데 어르신들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경우 나는 웬만하면 사드리는 편이다. 사실 물건 없이 바구니만 놓고 계셔도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도와드리는 것을 택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할머니를 보았을 때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청년, 껌 좀 사가. 응?"

"할머니, 얼마예요?"

"두 개 오천 원."

"네? 두 개 오천 원이요? 너무 비싸다."

"그, 그래? 그럼 하나만 사줘."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아차 싶었다. 껌을 팔지 않으셔도, 바구니만 있어도 도와드리려는 마음이었는데 도대체 왜 이 순간 껌의 가격이 궁금했는지 말이다. 껌의 가격은 중요하지 않은데 세속적인 나의 머리는 이미 모든 계산을 마친 후였다. 할머니는 내가 껌을 사지 않을까 봐 당황이 가득한 안색으로 나를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셨다. 


"할머니, 껌은 괜찮아요. 그냥 도와드리고 싶어요."

"아니야, 그래도 그냥 받는 건 미안하지. 이거 가져가."


나는 미리 생각했던 만큼의 금액을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기어코 내 가방에 껌 두 개를 넣어 주셨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에서 껌 두 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그냥도 도와주는 것이 맞는 일인데, 막상 물건을 팔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가격을 깐깐하게 따지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나도 세상살이에 찌들어 물건의 가격과 사람의 정,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런 경계선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꽁꽁 얼어붙어 다 터버린 할머니의 손, 그리고 그 손으로 껌을 집어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주시던 그 마음. 괜스레 부끄러워 왈칵 눈물이 터져버릴 것도 같았다. 


아들, 딸 보다 훨씬 어린 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창피함에 내 얼굴을 홧홧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왜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한 번 잡아주지 못했을까. 조금 더 따뜻한 말을 해드리지 못했을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있지만 어쩌면 할머니에게는 따뜻한 손길과 말도 함께 필요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힘든 것이 먹고 자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주 작은 그 최소한의 영역도 보장받지 못한 채 나이 들어버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깊어지고야 말았다. 할머니도 젊은 날의 청춘에는 아름다웠고, 찬란하게 빛났을 텐데.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 늙고 병들어 힘든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우리도 남은 생의 미래를 흙빛으로 그리지는 않으니... 이 모습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곳곳에 숨어있는 아픈 손가락일 테다. 


한동안 모니터 앞에 껌을 두려고 한다. 꼴랑 작은 돈 조금 도와주면서 생색내지 않는 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보다 우월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더 겸손하게 살기로 다짐하는 마음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조금 더 겸손하게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배려하며 다가설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마 내가 철이 다 들 때까지 오래도록 이 껌을 씹을 수 없을 것 같다. 




할머니가 가방에 챙겨주신 껌, 두 개 오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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