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크리처’를 보며
넷플릭스에 오픈된 드라마 ‘경성크리처’를 보았습니다. 제가 관심이 많은 시대극이기도 하고, 이 시대극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뻔한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해서 안 보고 참을 수가 없었죠.
이 드라마는 1945년 전쟁에 패한 일본군이 퇴각 명령을 받고 모든 것들을 소각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실제 하얼빈에 있는 731부대에서 이야기가 오픈되는데 그리고 난 뒤, 그 이전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실제 731부대는 잔혹한 생체실험을 하던 곳으로 유명한데요. 하얼빈에 가면, 일제가 미처 없애지 못하고 남겨둔 건물 안에 전시실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저는 5년 전즈음 그곳에 다녀왔었습니다. 그때 전시되어 있는 잔혹한 장면들을 보고 몇 날 며칠을 제대로 잠들지 못했던 슬픈 기억.
하얼빈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731부대의 전시실입니다. 이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실험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았고, 생체실험을 하다 죽은 사람을 해부했습니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을 해부하기도 했고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편히 눈감지 못할 이유 중에 하나였죠.
다시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경성 최고의 정보통이자 대규모 전당포 ‘금옥당’의 주인인 장태상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박서준 씨가 역할을 맡았고요. 또 다른 주인공 윤채옥은 10년 전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경성 최고의 정보통 장태상을 찾으면서 두 사람이 만나 인연이 시작되게 됩니다. 윤채옥의 역할에는 매력이 많은 배우 한소희 씨가 맡았더라고요.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던 장태상은 경무관에게 잡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쿠라가 질 때까지 그의 첩인 명자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죠. 경무관은 명자를 찾지 못하면 장태상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겠다고 말합니다.
명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태상,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윤채옥. 이 두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사라진 사람들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 드라마는 진행됩니다.
난 그저 살아남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오.
나는 독립이니 광복이니 그런 거 꿈꾸지 않네. 그저 이 난세 속에서
오늘도 죽지 않고 무탈하게
되도록 끈질기게 살아남기만을 바라네.
-장태상의 대사 중
이야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립운동을 하는 친구가 찾아와 독립자금을 부탁합니다. 그러면서 너는 나라 걱정은 안 하느냐고 타박하는 친구에게 장태상이 위의 대사를 남기죠.
아마도 극 중 나이로 봤을 때 장태상은 태어나보니 일제강점기였을 겁니다. 그러니 독립을 꿈꾸는 일은 너무 먼 훗날의 안개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저런 대사를 남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시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립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시대가 시대잖소.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고,
죄를 짓지 않아도
죽을 이유가 넘쳐나는 세상이오.
-장태상의 대사 중
저는 이 대사가 유난히 와닿더라고요. 태어날 때 부모, 시대, 국가 등 우리가 고를 수 없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 시대에 조선에서 태어난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일들을 겪었을까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무탈한 시대를 만나 살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가 그렇듯 고민 없고, 평안한 삶이 있는 시대는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비하면 매우 무탈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어요. 이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작가는 이 커다란 이야기를 통해 현시대에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곱씹으며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