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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Oct 03. 2023

[39] 판사님께 드리는 호소문

나의 싸움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판사님께 드리는 호소문은 유시민의 호소문이 유명하다. 그래서 나도 따라해 봤다. 모든 재판이 끝나고 결과만 기다리는 상황이라서 딱히 호소문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였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한번 나의 호소문을 같이 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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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판사님, 저는 원고 ㅇㅇㅇ 입니다.




제가 판사님께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단순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감정팔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해자를 더욱 강하게 처벌해 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제 변호사가 서면으로 잘 작성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




1) 피고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저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제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죽을뻔한 상황까지 몰아붙이고, 



2)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이 되었는데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보복성 성희롱 신고를 함으로써 저를 더욱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하고, 



3) 재판 막바지까지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제가 성희롱 경고를 받았다며 오히려 저를 공격하는 상황은 제 변호사가 전문적인 언어로 충분히 잘 작성을 해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제가 더 드릴 이야기는 없습니다.




저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입니다.




피해자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직장 내 괴롭힘 법안이 2019년에 발의 되었기 때문에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검색을 해보고 도움을 요청해 보려 해도, 대부분이 근로기준법 72조의 3의 내용을 설명한 글과 답변뿐이고, 노무사와 상담해 보라는 이야기여서 현실적인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할 경우 어떻게 진행되고, 어떠한 상황이 펼쳐지는지에 대한 내용은 단 하나도 없었어요. 이게 가장 힘들고 무서웠습니다. 아무리 시간을 쏟고 대책을 세워보려고 해도 방법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신고를 하고 인정받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현재는 다른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은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가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제 경험을 토대로 피해자들에게 현실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다른 피해자분들과 소통을 하면서부터 제가 판사님께 드리고픈 부탁이 생겼습니다. 말씀드리기에 앞서 판사님을 좀 더 설득하기 위해 잠시 제 블로그 방문자 수 와 성별 데이터를 보여드려 보겠습니다.




아래는 제 블로그의 약 2주간의 방문 기록입니다. 하루 평균 대략 100명 이상이 직장 내 괴롭힘 정보를 얻기 위해 제 블로그를 찾아옵니다. 하루에 100명, 한 달이면 3000명, 일 년이면 36000명입니다. 즉 일 년에 최소 약 36000 명 정도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합니다. 참고로 제 블로그는 인기가 없어서 검색을 해도 잘 나오지가 않습니다. 실제로는 더 높은 수치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다음으로는 방문하는 사람들의 나이와 연령입니다.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약자인 젊은 나이의 회사원들과 그중에서도 더욱 약자인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주된 피해자는 사회 초년생이면서 젊은 여성입니다.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제 블로그 데이터를 통해 보여드리는 수치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저처럼 회사에 신고를 하거나, 민사소송을 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뭅니다. 주된 이유는 보복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신고 후 회사를 다니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한다는 생계유지도 있습니다. 




내가 못나서 그렇다고 자책을 하는 분들도 있고요. 더욱이, 매일매일 다니는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해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습니다. 




최근에 영웅이라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 세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음 세대를 위한 마음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이분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다음 세대가 지금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힘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행위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매년 36000명씩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어요. 특히 젊은 세대와 여성들에게 이 현상이 더 뚜렷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디 다음 세대들을 지켜줄 수 있는 판결문을 부탁드립니다. 




이 판결문 하나로 세상이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어서 민사소송을 하고, 이러한 판결문들이 하나 둘 쌓이다 보면 분명 더 나아진 세상으로 개선될 것이라 믿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 삶이 피폐해져가는 대한민국의 젊은 다음 세대들에게는 용기를, 괴롭힘을 하는 가해자들에게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멈칫하게 되는 상황으로 말입니다. 제가 굳이 손해를 감수해 가면서 청구금액을 3000만 원 이상으로 하여 판결문을 받으려 하는 것도 이 이유 때문입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에 시행된 후 이제 3년 차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판례가 많이 부족한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처럼 민사소송을 하는 사람도 매우 드물고요. 더욱이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한다면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손해인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한 판결문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합니다.




부디 다음 젊은 세대들이 대한민국에서 더 잘 자랄 수 있는, 평범한 상황에서 일을 하고, 가정을 일구고,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온 대한민국에서 웃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고, 가해자들은 주춤하게 만드는, 또 다른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민사소송에 인용될 수도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한 판결문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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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어서 판사님께 보냈다. 다음 글은 판결문과 함께 판결 내용을 말하려고 한다. 참고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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