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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사람 Jan 25. 2021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란

 방 청소를 하다 보면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과 다 읽은 책 등 안 쓰는 물건들을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언젠가 입겠지, 버리긴 아까우니까 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수명을 다시 한번 늘려준다. 다음 청소하는 때 다시 보게 되면 또 버릴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할 거면서 그동안만큼은 지금 있는 자리에 계속 붙어있을 수 있게 선량한 마음을 베푼다. 영화 토이스토리처럼 사물에도 생명이 있다면 나에게 많이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 좁은 방은 점점 비좁아지고 있었다.


 새로운 해가 되면 그전에 없었거나 모서리 한편에 찌그러져 있던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설쳐댄다. 그런 덕분에 매 1월은 꽤 실속 있게 보내게 되는 것 같다. 올해는 '미니멀리스트'라는 꿈이 생겼다. 일단 방의 구석구석을 정리해서 줄일 수 있는 것들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생각을 알면 그 물건들은 벌벌 떨 것이다. 하지만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열심히 할 일을 다 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다른 곳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왜 물건들에게 해명 따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버리거나 팔거나 나누거나였다. 일단 지금 수입이 없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 팔 만한 건 다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중고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였다.

 물건을 올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 채팅이 오고 서로의 요구가 맞으면 직접 만나서 물건을 주고받거나 택배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내 것 몇 가지를 다른 주인을 만나게 해 주었다. 요즘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는 나에게 중고 거래를 하는 그 공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다. 웃긴 건 거기서도 특이한 사람 질량 보존의 법칙이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짧은 말이나 잠깐 보는 모습 속에서도 그게 너무 잘 보였다. 그들에게 간 내 물건들은 안녕할까 궁금해진다.


 옷가지는 중고 거래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분위기인데 문제는 안 읽는 책들이었다. 책은 아무리 비싸봤자 아주 높은 가격인 경우가 적어서 그런지 제대로 헐값에 올려도 잘 팔리지 않았다. 방에 들어오면 더러운 책장이 가장 먼저 눈에 띄기 때문에 정리를 하긴 해야 했다. 지금까지 놀러 갔던 친구들의 집과 비교하면 우리 집에는 책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중에 인상 깊어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거나 소장하고 싶은 책은 손에 꼽는다. 나머지의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가끔씩 책을 구매하는 사이트의 바이백이라는 중고서점이 떠올랐다. 바로 들어가서 매입이 가능한 책들을 판매 신청했고 매입 불가한 책들은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다.



 정리하는 내내 이건 언젠가 볼 거 같은데, 언젠가 쓸 일이 생길 거 같은데 하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미니멀리스트의 길은 너무 멀고 험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기분은 참 단순한데 그것을 행동하는 것은 어려웠다. 복잡함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물건을 덜어내고 있는데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이것들을 조금 더 신중히 샀었더라면 어땠을까.



 이제부터 미니멀한 삶을 살겠다고 안 쓰는 물건들을 열심히 정리 중인데 그냥 처음부터 이것들을 사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평소 무엇을 살 때 단단한 뜻 없이 그때그때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욕구로 물건을 사는 일이 많다. 일명 지름신을 내림받는 일이 잦다. 그럴 때마다 정말 필요한가를 곰곰이 되풀이하고 난 후 결정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무언가를 떼어내야 되는 아픈 마음을 조금 덜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물질에 대한 욕심이 무섭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안 쓰는 물건 쿨하게 버리는 인간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 올해는 물질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 그냥 말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이 익숙해지도록 되풀이해야 진짜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다짐이 다시 돌아오는 겨울까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흥청망청 쓸 것인가. 이제는 진짜 굳은 결심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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