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긴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의정부로 향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금값이 또 올랐네."
남편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또 오른다. 예물반지를 맞추던 1년 전만 해도 그때가 역대 최고가였는데.
지금이라도 금을 사놔야 하나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루는 시댁, 하루는 친정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시댁부터였다. 이제는 힘들어서 더 이상 밭을 일구지 않겠다고 하시는 시부모님. 이번 쌈이 마지막이라고 하신다.
마지막 쌈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했다.
아주버님과 남편이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고 곁들임으로 육회를 준비한다. 띠앗 좋은 형제의 뒷모습이 듬직해 보인다. 그리고 한쪽에서 슬쩍 신문지를 펼치고 그 위에 고기 불판을 준비하는 아버님. 아주버님이 보고는 언성을 높이며 제지한다.
"아, 아버지! 이럴 거면 밖에서 먹었죠! 어버이날인데 저 맘 불편하게 하지 말고 제발 가만히 계세요."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며 아버님은 지지 않고 하던 준비를 계속하신다.
나는 좌불안석으로 있다가, 그냥 초등학생 조카랑 방에서 놀고 있으라는 지령이 떨어진다. 어머님과 형님은 총괄 감독들이다. 이 집은 남자들이 움직이는 집이었다. 그 모습이 훗훗하면서 부러웠다.
다음날 친정집. 시댁에서 잔뜩 챙겨 온 쌈을 처리하기 위해 또다시 삼겹살이었다.
같은 메뉴지만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엄마가 모든 걸 준비했다. 밥을 짓고, 쌈을 씻고, 고기를 굽고, 상을 차렸다. 나는 그저 옆에서 나온 설거지를 바로 하고 수저를 놓는다.
아빠는 어설프게 부엌에 들어와서 시늉을 하려다가 엄마의 말에 깨갱한다.
"당신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몸이 안 좋은 남동생은 방 안에서 아예 나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어딘가 많이 상했다. 나는 예전부터 동생과 싸우다가도 그의 하얗고 미추룸한 얼굴을 보면 화가 풀렸었다. 저절로 용서가 되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친동생을 보고 그럴 수 있냐는 말들을 들어왔다. 엄마에게 왜 동생만 신경 써서 낳아줬냐는 질투 섞인 이야기도 했었다. 누나도 시샘할 정도로 그는 잘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안색이 가맣고 피부가 마르고 염증들이 올라왔다. 몸은 더 배짝 마르고 거북목은 심해졌다. 통증 때문인지 몸가짐새도 달라졌다. 뒤뚱뒤뚱하게 배틀걸음으로 걸어다닌다.
그의 너무나 바뀐 모습을 보면서 내 속도 이리 상한데 낳아준 부모님은 얼마나 더 그럴까 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삼겹살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엄마의 부엌치레는 끝나지 않는다. 동생이 토스트를 먹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또 사부작사부작하더니 토스트를 정성껏 내왔다. 그러나 동생은 뭐가 불만인지 고개를 갸웃한다. "트렌치 토스트 해달랬잖아…" 그는 늘 엄마의 수고를 인정하지 않고 볼멘소리만 해댄다. 건강 때문에 예민해서 더 그런 걸까. 시집살이는 내가 아니라 엄마가 하고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엄마는 그렇게 내처 일을 했다.
다음날, 신혼집으로 돌아온 뒤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핏물이 흥건히 번진 침대 옆 사진. 최근에 지병으로 받은 수술 부위에서 실핏줄이 터진 것 같았다. 생리대를 뚫고 바지까지 피가 젖었다고 한다. 쪼그려 앉지 못하는 동생 대신 핏물 자국을 닦은 건 아빠였고, 결국 밤 12시,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다.
동생을 태우고 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한 새벽.
나도 잠을 못 자고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 피가 너무 많이 나.”
엄마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밤이 얼마나 아찔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병원 바닥에도 피를 흘리고 다녀 청소하시는 분이 따라다니며 닦아주셨다고 했다.
엄마는 그 모든 걸 곁에서 지켜보며 애간장을 태웠을 것이다.
불안하고 무섭고 막막했을 그 밤, 엄마의 마음.
아픈 자식의 치다꺼리를 하는 부모가 나의 엄마라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수술을 받고 직장인들 출근시간도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연락을 받았다.
이제 남의나이 먹어가는 엄마지만, 여전히 엄마는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그 모든 지점을 잇는 건 늘 엄마였다.
엄마는 어디서든 손을 드러내길 싫어한다. 일을 많이 해서 투박해지고 굽고 쪼글쪼글한 손. 교회에서 찬양할 때도, 누군가와 악수할 때도 손을 보이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그 손으로 엄마는 밥을 짓고, 토스트를 만들고, 새벽길을 달렸다. 엄마는 손을 부끄러워하지만 나는 안다. 그 손은 누구보다 많은 것을 만들고, 어루만지고, 견디며 살아왔다. 보이지 않는 날들을 차곡차곡 배겨낸,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깊고 단단하게 빛나는 알천이다.
금값이 비싸다지만 몇 돈을 갖다 줘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황금이 있다.
나는 그녀의 황금손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