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0주차, 임신선이 짙어지고 배가 작은 수박처럼 커졌다. 홀쭉하기만 하던 배가 불과 1-2주 만에 나오고 있다. 아기가 폭풍 성장하는 중이다. 정면에서도 임신부 모양새가 난다. 넉넉하다 못해 흘러내리던 청바지의 단추가 잠기지 않는다. 하필 꼭 청바지를 입고 싶었던 날에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계속해서 배고프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위장이 가득 찼었는데 금세 속이 쓰릴 만큼 배고프다. 가짜 배고픔을 주의해야 한다지만, 몇 끼 굶은 듯한 느낌으로 배고파서 참을 수 없다. 아기가 손톱으로 배때기를 막 긁고 있는 것 같다.
체중은 임신 전 몸무게보다 6kg 늘었다.
인생 최고 질량이라 그런지 몸이 정말 무겁다. 벌써부터 허리 숙이는 게 힘들고 여기저기 뻐근하다.
중기가 되고부터 철분제를 필수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철분제를 먹으면 변비 증상이 생길 수 있다는 후기를 봐왔지만 그전에는 소화가 늘 잘됐고 장유산균과 유제품도 꾸준히 먹고 있었기 때문에 내 이야기가 아닐 거라 여겼다.
그러나 나는 지금 지독한 변비에 걸렸다.
샤브샤브 같은 건강한 메뉴를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한 적은 처음이었다. 채소들이 밀어내려고 성실히 용은 쓰는데 밀어지지 않는 걸까. 걷기가 힘들 정도로 배가 빵빵하고 아팠다. 옆에서 남편이 급하게 검색을 한다. 케일과 바나나, 그린키위를 같이 갈아 마시면 효과가 있다고 하여 근처 마트에서 사 왔다.
식은땀이 맺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을 틀고 왼쪽으로 드러누웠다. 눕고 좀 지나니 진정이 되었다. 그동안 남편이 케바키 주스를 만들어주었다. 알룰로스를 좀 타서 그런지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냥 키위주스 같았다. 그러나 다음 날, 그다음 날까지도 별다른 좋은 신호는 오지 않았다. 얼마나 꽉 막힌 것인가.
최근에 남편이랑 좀 싸웠다. 남편도 더해지는 책임감 때문에 예민해진 건지 별것도 아닌 걸로 서로 짜증을 냈다. 내 스트레스가 아기한테 전해질까 봐 그게 또 스트레스였던 걸까. 높은 데서 떨어지고 치아가 뚜두두둑 빠지는 등 며칠 연달아 악몽을 꿨다. 꿈속에서 너무 울어서 깨고 나서도 눈이 부은 것 같았다. 실제와 환상이 한참 구별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오고 있는데 제철 회인 전어를 먹지 못한다. 흰 살 생선은 임신부도 조심조심해서 먹어도 되지만 붉은 살 생선은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회인데.
처음에는 올 가을만 버티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모유수유까지 생각하면 최소 2년은 끊어야 할 것 같다.
그런 내 앞에서 남편이 전어회를 냠냠하며 먹는다. 싱글벙글한 얼굴로 괜히 맛없다고 말하면서. 물론 내 몫으로 놓인 새우도 충분히 맛있었지만 얄미운 마음이 지워지진 않았다.
두피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원래 각질이 조금 있긴 했어도 이렇게 심하진 않았다. 가려워 참기가 힘들다. 오른쪽 뒤통수를 긁으면 비듬이 우수수 떨어진다. 어두운 색 상의는 꿈도 못 꾸게 되었다. 찾아보니 비듬도 임신부가 겪는 흔한 증상 중 하나라고 한다. 유명하다는 샴푸로 몇 가지 바꿔 쓰고 별별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기가 되고 피부로 느껴지는 것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우리의 아기여도 내가 느끼고 버텨야 하는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내 감정과 선택을 완벽히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이 세계에 나밖에 없다는 외로운 진실을 피부로 마주했다.
임신 안정기가 되었고 황금 같은 계절이 왔지만 까닭 없이 쓸쓸해지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