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물지 않은 존재들

by 김밍키

길가의 감나무조차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 같은 가을이다. 그런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멈춰 선다.


요즘은 자기 일에 광적으로 열정적인 사람들이 결국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순간들을 자주 목격한다. 대상 최강자 챔피언 같은 단어들이 들려온다.

남들은 알 수 없는 수많은 궤적이 그런 이름을 만들었을 것이다. 송알송알 땀방울들이 열매가 되어 돌아오는, 바야흐로 그동안의 노력이 수확되는 계절이다.


그렇게 몰두한 끝에 결국 최고가 되어버린 모습을 보면 부러움이 먼저 찾아온다. 나는 아직 나의 분야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추후 본업으로의 복귀를 위한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자격증 시험을 보려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강의를 신청했다. 비싼 강의료부터 부담이 되어 망설였지만 도전하기로 했다.

집에서부터 대중교통으로 편도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신길의 학원에서 하루 6시간씩 6회 들어야 하는 교육이다. 중간중간 주어지는 5-10분의 쉬는 시간에 챙겨 온 간식을 재빨리 먹어야 한다. 입이 두 개가 된 대식가 임신부에겐 계속해서 배고픔이 틈입한다.


배 안에서 태아는 온몸 다해 부딪고 논다.

쿵쿵쿵, 강사님의 마이크 소리보다 요란스럽다. 정말 세게 찰 때는 몸도 같이 흔들리면서 깜짝 놀란다. 무엇이 불편한 건 아닌지, 배 속이 너무 좁고 심심한 건지. 알 수 없는 너의 상태를 가늠해 본다.

고래조래 핑계로 수업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오래 앉아 있는 거 하난 자신 있었는데, 지금은 엉덩이 무거운 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눈물 흘리면서라도 겨자를 먹는다는 말이 이런 걸까. 실은 수강료가 아까워서라도. 결국 수료증을 받아 들었고 기분이 좋아져 인증샷까지 찍는다.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바람이 스치고 노란 잎이 한 장 떨어진다. 가로수들이 서서히 색을 잃어간다.


이젠 자격증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난 그제나 오늘이나 꼬리뼈가 아프도록 소설을 읽었다. 이젠 버릇이 된 독후감까지 써낸다. 우선의 할 일을 제쳐둔 현실감각의 결여도 과연 열정이라 할 수 있을까. 나름 재능이라 믿었던 애매함들도 어느새 낙엽처럼 흩어진다.


기껏해야 sns에서 신변잡기나 늘어놓는 나는 점점 더 무수해질 주변 사람들의 결과물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밤을 시새울까. 이런 효율 적은 땅으로 과연 실팍한 무언가를 재배할 수 있을까.


차라리 대회나 경연이라면 자신 있지만 자신이 걷는 길은 그런 식으로 증명하기 어렵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고 칭찬받지 않아도 자기의 길 위에서 각자의 꿈을 채색하고 빚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열정을 깊이 존경한다.

가을의 들판이 그렇듯 누군가는 눈에 띄게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 누군가는 아직 여물지 않은 마음을 품은 채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계속 무언가 하고 있는 이 마음이, 어쩌면 내가 붙들어야 할 단 하나의 확신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엉성하고 미숙하게 몸과 마음의 환절기를 맞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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