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는 호떡호떡

by 김밍키

호떡이 계절보다 먼저 찾아왔다.

시월 중순까지도 때아닌 열대야가 이어지더니 이번 주 들어 기온이 훅 내려앉았다. 가을이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추워진 날씨와 함께 거리에서 기름냄새 설탕냄새가 풍겨온다는 것. 아직 호떡의 계절이라 하기엔 이르지만 요즘은 호떡에 꽂혀서 벌써 여러 번 사 먹었다. 호떡 트럭이 귀한 줄은 올해 처음 알았다. 예전엔 아무 데서나 보였던 것 같은데 이젠 동네 한 바퀴를 다 돌아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 귀한 존재를 만났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뭐가 먹고 싶다 하면, 남편은 타고난 정보 탐색 능력을 발휘해 이동 가능한 지역까지 구석구석 맛집을 금세 찾아낸다.


트럭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트럭 하나가 저 멀리서 반짝였다. 그곳에서 아저씨가 호떡을 굽고 있었다.

“두 개만 주세요. 종이컵에 담아 갈게요.”

반죽 위에 설탕을 소처럼 감싸 넣고, 아저씨가 쇠 누름판을 손에 쥔다. 지글거리는 기름판 위에서 호떡이 얹히는 순간, ‘죽—’ 하고 눌리는 소리가 난다.

단내가 바람을 타고 흘러나온다.


군색한 체력의 엄마가 되기 싫어서 매일 산책을 나선다. 임신하고 나서 빼먹지 않고 한 일이다. 물론 이것조차 안 하면 활동량이 너무 없다며 남편이 반강제로 끌고 나오는 거긴 하지만. 오늘은 각자 호떡 종이컵을 한 손씩 들고 나란히 걷는다.


겉면이 튀기듯이 바삭하게 구워진 호떡이었다.

“역시 난 돼지인가 봐. 지난번보다 이렇게 튀긴 것 같은 스타일이 더 맛있네.”

남편의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전에 먹은, 반죽이 살짝 눅진하고 담백한 호떡이 더 좋았다.


몇 시간 전, 우리는 조금 다투었다. 정확히는 내가 카톡으로 매타작을 했다. 친구의 아내가 SNS에 올린 게시물이 화근이었다.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내용이었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친구는 도서관에서 임신, 육아 관련 서적을 한가득 빌려왔다고 한다. 아내가 임신한 몸으로 혼자 고생하는 기분이 들지 않게 임신에 대한 모든 것을 공부하겠단 자세처럼 보였다. 그의 학구열에 감동하다 못해 질투가 치밀었다.


게다가 아내에게 쓴 정성스러운 편지의 일부가 사진으로 올라왔는데, 편지를 어찌나 잘 쓰던지. 문장 하나하나가 다 내가 평소에 듣고 싶던 말이었다. 남편은 책을 보거나 편지를 쓰는 일엔 영 소질이 없다. 다 내가 그토록 바라는 것들이라서 내가 받지 못한 것들을 받은 친구의 아내가 더 부러웠다. 캡처를 해 보내면서 왜 이렇게 못 해주느냐고 잡도리를 했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옷에 흘리지 말고.”

비교당한 당사자도 기분이 썩 나빴을 텐데 그는 잊었을까. 내가 손에 꿀을 흘려 데이진 않을까, 옷이 더러워지진 않을까 노심초사다. 그렇게 몇 번을 나에게 주의를 주던 사람이 조금 뒤 자기 옷에는 꿀을 잔뜩 흘려놓는다. 그의 검은색 플리스 재킷엔 끈적한 갈색 자국이 길게 번졌다. 다행히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어 화장실에 들렀고, 물로 씻어내었다.


마트를 나오는데 작은 문턱이 있었다. “발 조심“. 남편은 항상 조그만 턱이라도 앞에 있을 때마다 조심하라고 알려준다. 걸음마를 뗀 지 얼마 안 된 아이도 이 정도 턱은 잘 넘어갈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그는 누가 봐도 높은 문턱에서 발을 헛디뎌 다치기도 한다. 자기의 발목은 접질리더라도 내 걸음부터 살피는 사람. 그의 시선엔 늘 내가 있고, 그 안에서 나는 보호받는다.


완벽함 대신 꾸준함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

이제야 안다. 비교는 사랑을 닮지 않았다는 걸.


그의 손을 꼭 잡고 마지막 호떡 한입을 베어 물었다.

아직 오지 않은 겨울 문턱, 입에서 손으로 발끝까지 전해지는 사랑의 온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호떡이 유난히 달게 느껴진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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