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아직, 그러나 이미

by 김밍키

12월이 시작됐다. 진짜 겨울이다.

반짝반짝 트리, 아리아나그란데의 캐롤, 하얀 입김, 따뜻한 간식 트럭 냄새.


무기력이 반복되는 겨울이 싫었는데 이젠 겨울이 좋다는 사람들은 이래서 좋아하는구나 하는 이해심이 한층 생겨난다. 원래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우울했다. 마지막 잎새를 나와 동일시했다. 점점 말라가는 나뭇가지와 같이 말라갔다.


그런데 올해는 가을이 끝날 듯 말 듯 연장을 거듭해 주는 것 같았다. 겨울을 드디어라는 부사로 맞는 건 아무래도 처음이었다. 기상청에서도 보란 듯이 이번 늦가을이 예년보다 온화했다고 인정한다.


그끄저께는 영하권이었는데 요 며칠은 외투가 거추장스러워 팔에 걸치고 다녔다. 삼한 사온의 하루하루가 규칙적으로 배열되고 있는 모습이다.

몸도 계절을 따라 삼한사온을 닮아가는 걸까. 기분이 포근한 게 나흘 정도 된 것 같다. 하지만 언제 또 강추위에 흔들릴는지 모른다. 인간관계 폭이 좁아지니 스트레스받을 일은 덜하지만, 여전히 한 번씩 한파가 몰아친다.


어쩌면 이런 변덕스러움이 나의 문제가 아닌 계절의 언어에 따른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핑계가 생기니 더 마음이 푹하고 누그러진다.


"그렇지 않니?"

이젠 오감이 모두 생겼다는 태아에게 은근슬쩍 동의를 구해본다. 말을 걸고 모스부호를 해독하듯 움직임을 가만히 관찰한다. 누군가 지켜본다면 적막한 메아리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무언가 소통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식의 교감을 하다 보면 하루가 잘 간다. 집 지박령인 내가 심심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전엔 나름 댄스동아리 출신인 남편을 닮아 애기가 춤을 자주 추는 모양이다 했었는데, 그때의 태동은 태동도 아니었다. 30주부터가 진짜였다. 발인지 손인지 불룩 내민 채 몇 초 유지하길래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러다 악수까지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탈출 작전 중인 게 분명하다. 너 이 자식, 아직은 안 돼. 내 표정이 보일까 싶어 엄격한 입술을 하고 배를 손으로 톡톡 친다.


나는 그렇게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오랫동안 목을 구부리고 있다. 그러다 한 번씩 냉장고에 자석으로 고정해 놓은 입체초음파 사진을 본다. 웃음이 절로 나는 귀염 있는 얼굴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남편을, 이목구비는 나를 닮았다. 나를 닮은 존재가 세상에 나올 날이 머지않았다니. 왠지 이번 겨울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유의미한 겨울이 될 것 같은 예감이 싹튼다. 다시 우린 소리 없는 장난을 주고받는다.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 크리스마스는 아직, 그러나 이미 온 것 같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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