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산책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
얼음길도, 울퉁불퉁한 바닥도 아닌 평지에서 발목이 삐끗했다. 여느 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길이었다. 혼자 서울 약속 장소에 가던 길에 넘어져서 무릎이 깨진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일어난 일이다.
이번엔 옆에 보호자가 있었다. 남편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팔짱을 끼고 걷는 중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엎어지진 않았다. 몸이 그다지 무겁지 않고 몸 중심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왜 자꾸 넘어질까. 확실히 내 몸이 이전의 내 몸이 아닌가 보다.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이것은 출산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중요한 징조 중 하나였다. 관절과 인대가 늘어나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내 다리 하나 내가 다스릴 수 없었다.
남편은 자신이 양손에 각각 귤봉지와 커피를 들고 있어서 더 잽싸게 잡아주지 못함을 책망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게 최선이었다. 그곳을 지나가려면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던 것 같다. 접질림 운명론이랄까. 눈 깜짝할 새였고 나는 냅다 울어버렸다. 너무 아팠다. 그러고 또 괜히 민망스러워 웃었다. 울다 웃는 건 내 버릇이다. 하지만 계속 아팠다.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날, 정형외과에서 부분인대파열 진단을 받았다. 원장님이 원래는 한 달 정도 깁스를 하는 게 맞지만 이제 곧 만삭이라 어떤 처치를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하신다. 그리고 잠시 후 신속한 처방이 내려졌다. 출산 전까지 발목 보호대를 잠잘 때를 포함해서 매일 착용하기로 했다. 이미 부어 있지만 막달 되면 더 부을 거라며 엑스라지 사이즈의 발목보호대를 신겨주셨다. 원장님의 정수리 한가운데 잘 나누어진 가르마를 보며 누군가의 다정한 아빠이고 남편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처방도 따로 받을 수 없었다. 아기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혹시 모를 골절 확인을 위해 납복을 입고 겨우 방사선 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방사선사 선생님도, 원장님도, 다들 내 러닝화에 관심을 보였다.
“임신 전에 달리기 좀 하셨나 봐요.“
”좋은 신발 신으셨네요.“
나는 걷거나 달리는 일에 정말 젬병이다. 그냥 러닝 대유행에 발맞춰 가성비 좋은 걸로 샀을 뿐이었다. 속으로 낄낄 웃었다. 신발을 눈여겨보는 건 부상 원인을 추적하기 위함일까.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정형외과만의 귀여운 직업정신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를 절뚝거리며 걸으니 곱절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평소엔 남아돌았던 교차로의 파란불 신호가 유난히 성급하게 꺼진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집에 갇혀 살게 생겼다.
임산부에게 가장 좋은 운동이라는 산책을 강제로 할 수 없게 된 게 걱정이다. 그래도 골절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긍정 회로를 억지로라도 돌려본다.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이니까.
계절마다 마음의 제철이 다르다면, 겨울의 제철은 멈춤일 것이다. 무언가를 더 해내지 않아도, 잘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계절. 발목 보호대를 한 채로 나는 겨울로 들어섰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지켜야 할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