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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밍키 Feb 01. 2021

이 인간관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근마켓에서조차 상처 받는 사람

일만 그만두고 나면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닐 때 받는 좋지 않은 자극들은 다 그 안에서 생긴 것이었고, 그 밖의 생활은 너무 평온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일을 잠시 쉬고 있지만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다.


사람이 3명 이상 있는 모임에서 그중 한 명은 진상일 거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이론을 진리로 믿기로 했다. 그냥 가설 따위가 아니라 학문으로 정립해도 좋을 만큼 정확한 이야기라는 걸 몸소 느꼈다. 사건은 요즘 나의 '비우기' 생활을 도와주는 중고 거래를 하는 공간에서 시작됐다. 그곳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정말 만나는 3명 중 한 명 꼴로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음을 느꼈지만 그 정도는 역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해 라고 넘길 수 있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별로 귀엽게 넘기지 못할만한 거래를 경험했다. 나는 판매하는 입장이다. 처음 가격을 정해서 올릴 때부터 내 딴에는 싸다고 생각하고 올렸기 때문에 더 이상 에누리는 안된다는 설명을 붙였다. 하지만 그 말은 쏙 빼고 본 건지 4천 원을 깎아줄 수 있냐는 채팅이 걸려왔다.  약 20%를 할인해달라는 것이다. 원래부터 싼 상품의 가격을 더 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파는 사람이 나름 고민을 하고 정한 금액이니 무조건 깎아보려고 하는 속내가 보이면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값을 내릴 수 없다는 글까지 써놨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내 말을 무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정중히 거절했더니 그럼 2천 원을 깎아달란다. 휴.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2천 원을 아껴서 크게 득 볼 게 없다.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다음 약속 시간을 정했다. 나는 시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그 사람이 원하는 때에 맞추기로 했다. 그러고 장소를 정하는데 보통은 파는 사람이 가까운 쪽으로 사는 사람이 와준다.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게 상도덕이라고 생각될 만큼 대부분 그렇게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보통'이 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기 집 쪽인 것 같은 장소를 부르더니 조금 후 다시 다른 곳을 제시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도 본인이 볼 일 보고 버스 내리자마자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상황을 만든 것이다.


나는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으로서 1분 1초가 아깝다. 시간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 그런 귀한 시간을 써서 중간 거리인 것 같지도 않은, 자기한테만 가까운 곳을 가주기가 싫었다. 그리고 굳이 꼭 팔아야 되는 물건도 아니고 손해 보듯이 싸게 파는 건데 말이다. 본인 이익만 생각하고 말한 조건들에 내가 맞춰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대답을 안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집요하게 답장을 해달라고 귀찮게 굴어댔다. 결국 나는 그 모든 요구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이 깔끔했으면 이렇게 씩씩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만나서 물건을 주고 입금을 확인하기까지 5초도 안 되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헤어지고 또 5초도 안 되는 시간에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확인하니 그 사람이었다. 이거 진품이 맞냐, 어디서 산 건지 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글자 그대로만 보면 썩 나쁜 투는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가짜를 진짜로 속인 거 아니냐고 따지는 나쁜 투로 들렸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줬건만 5초 만에 돌아오는 말이 고맙다는 인사가 아니라 이제 와서 그 물건의 출처를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또 그거에 대한 대답을 바로 해주었는데 '안읽씹'을 한다. 몇 시간째. 내가 답장이 느렸을 때는 번호를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귀찮게 하더니.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너무 다른 사람이다. 마지막에 그런 신경 쓰이는 질문을 해놓고 이렇게 잠수라니. 찝찝하고 답답하다.


진상은 처음 몇 마디로 구분할 수 있다. 초반에 이상하다고 느낀 사람은 100% 마지막까지 이상하다. 나름 사회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건데 처음 낌새를 눈치채고도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이렇게 당해버린 게 너무 억울하다. 화가 나서 눈물까지 날 정도였다. 열심히 배려했던 내 모습들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난 뭘 기대한 걸까. 알지도 못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뭘 기대했길래 이렇게 속상한 기분이 드는 걸까. 잠깐 맺고 끝내는 거니까 이 인간관계는 괜찮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아니었다. 모든 인간관계는 어려운 거구나 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세상엔 별별 인간이 많다. 내가 겪은 일은 진상 축에 끼지도 못하는 매우 사소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에서조차 상처를 받았다.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당분간 그곳의 활동을 그만 쉬라고 한다.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인터넷 공간을 사람 때문에 떠날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상상을 못 했다. 인생은 신기할 정도로 예상했던 거와 다르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그럴듯하고 순수한 이름을 내세우고 시작했지만 사실 이것도 돈이 오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정이 완전히 아름다울 수는 없었나 보다. 돈 버는 일은 뭐가 됐든 얼마가 됐든 힘들구나. 씁쓸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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