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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사람 Sep 11. 2021

모르는 이의 어깨

나를 꿈꾸게 한 것

 엄마랑 드라이브를 하던 중 저 멀리 산속에 파묻혀 있는 건물이 하나 보였다. 그건 놀랍게도 내가 나온 학교였다. 몇 초 뒤 엄마가 약간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엄마는 네가 언제 어떻게 저길 다녔는지 기억이 잘 안 나.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졸업을 해선 돈도 벌고 엄마 차도 사주고... . 언제 저길 다닌 거야 우리 딸? 너는 기억이 나?"


 엄마가 나를 기특해하는 그 말이 고마웠고 기분이 좋았다.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를 쳐다봤다. 잠시 잊었던 추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버스를 타고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오가며 통학을 했었다. 수업 일정은 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차 있었기 때문에 항상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버스에서는 열심히 잠을 충전하기 바빴다.  대개 옆에 앉은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꾸벅꾸벅 대곤 했다. 나도 모르게 옆 사람의 어깨에 대놓고 기대어 잠든 적도 많다. 대부분 자신의 어깨를 선뜻 내어줬다.


 깊이 잠든 내가 도착지를 놓칠까 봐 내릴 때 안 됐냐며 중간에 깨워주는 사람도 있었고, 많이 피곤하냐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기댄 것을 호감의 표시로 알았는지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힘들게만 느껴졌었던 통학길이 돌아보니 재밌고 따뜻한 기억들도 많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때는 그들의 어깨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어깨 빌려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지 않나. 피곤에 찌들어 불쌍한 대학생에게 당연하게 베풀어야 하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많이 피곤했는지 머리를 이쪽저쪽 떨구다가 내 쪽으로 기대려고 했던 적이 있다. 나는 빠르게 어깨를 비틀며 피해버렸다. 무겁기도 하고 귀찮았다. 은근히 짜증도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본인은 모르는 이들에게 여기저기 신세를 져놓고 남들에게는 왜 그렇게 비싸게 군 것인지 참 부끄럽다. 자기중심적이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그들도 무겁지 않았을까, 짜증 나지 않았을까.

어깨를 아무렇지 않게 빌려주었던 그 마음들이 어떤 것이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직도 완전히 이해가 가진 않는다.




 하나 확실한 것은 흔쾌히 내준 그들의 어깨 덕분에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대학 생활이 조금은 더 활기찰 수 있었다. 높고 험한 산턱에서도 꿈을 꿀 수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 꿈은 사랑하는 엄마에게 기쁨과 감동이 되었다.


 별거 아닌 듯하지만 때로는 그런 작은 마음이 모여서 사람을 살게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 어쩌면 잠깐 머물렀던 그 따뜻한 어깨들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차 안에는 기분 좋은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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