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오만?
눈이 번쩍 떠지는 아침이 있다. 그런 날은 높은 확률로 지각이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알람으로 깨는 보통의 아침은 출근해야 됨을 서서히 인식하며 깨는데 거하게 자면 그렇게 어느 순간 아주 힘차게 눈을 뜬다. 눈꺼풀에서 팍 하는 소리가 날 것만 같이. 오늘은 정말 늦게 눈이 떠졌다. 그만큼 망했다는 걸 직감했나 보다.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시계가 바로 보였는데 8시 50분이다. 9시까지 출근인데 출근 10분 전에 일어나다니.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젯밤을 더듬으니 기절하듯 잠들어서 미처 알람을 못 맞춰놓고 잔 게 생각난다. 충분히 자면 평소 일어나던 시간에 저절로 깨기도 하는데 요새 피곤했는지 꿀잠을 자버렸다.
전 세계인 특징, 큰일이 나면 엄마부터 찾는다. "아 엄마 어떡해...."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늦잠을 잘 자지 않는 엄마도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고 놀란다. 휴대폰을 들어 회사에 상황을 알렸다. 그러곤 침착하게 작동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 같은 머리를 굴리려 애썼다. 어떤 단계들을 생략하고 나가야 할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울을 보며 2초 정도 고민을 했다. 결심한 듯 그대로 아무 옷이나 주워 입었다. 전부 생략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부랴부랴 현관문까지 나갔다. 순간 뵈는 게 없다는 걸 알아차렸고 얼른 들어가서 렌즈만 끼고 다시 나왔다. 정신이 없었다.
말 그대로 눈곱만 떼고 나왔다. 이제 생각하니 눈곱도 안 뗐을 수도. 휴대폰 까만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가관이다. 얼굴이 매우 퉁퉁 부어있다. 일어난 지 2분 만에 집에서 나온 거였다. 그리고 나는 59분에 출근 지문을 찍었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면서 대기록을 세운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다들 놀란 표정이다. 분명 5분 즈음 전에 일어났다고 전화 왔는데 도저히 도착 가능한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집이 정말 가깝긴 한가보다 라며 부러움이 섞인 내색이다. 걸어서 출근하면서 매일매일 난 복 받은 사람이구나 느끼고 있는데도 새삼스럽게 또 마음속에 감사함이 피어난다. 하지만 얼른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진정시켰다.
나처럼 회사가 가까운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 집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엄마 아들은 나보다 훨씬 일찍 나가서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해 가며 강남을 다닌다. 생기 없는 얼굴로 지옥철이라 불리는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있을 동생이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짠하고 안쓰럽다. 많은 이들이 이미 출근길에서부터 스트레스를 잔뜩 받는다는 걸 잘 안다. 주변을 보면 다들 그렇기도 하고 나도 예전에 강남까지는 아니더라도 편도 한 시간 거리를 2년 가까이 다녔으니까. 경기도민에게 서울이란 가끔 놀러 가기는 좋지만 매일 돈 벌러 다니기엔 매우 힘이 부치는 곳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직장을 다니는 걸 아는 모든 사람이 날 부러워한다. 사실 내가 부러 더 말하기도 했다. 집 앞으로 다니는 게 뭐 노력해서 이뤄낸 업적 같은 것도 아니니 당연히 과시하려는 의도는 없다. 너무 감사해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 뿐이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사람들이 듣기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될 수도 있고 괜히 질투만 키울 수도 있다는 걸 지금은 안다. 실제로 부러워하는 걸 넘어서 샘하는 얼굴을 꽤 봤다. 시샘을 느끼곤 약간 놀랐다. 감사는 퍼지는 거라 다다익선, 나눌수록 좋은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에게 감사가 자칫하면 누군가에게 자기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없는 걸 남이 갖고 있으면 가까운 사람이라도 질투를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잘 말하는 편인데 그냥 막 다 표현하고 살면 안 되겠다. 그게 감사에도 해당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사회생활 경험치가 하나 늘었다고 낙관하기엔 조금 억울한 면도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안전하게 감사를 공유할 수는 없을까. 쉽게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 고민이다. 감사와 자랑의 경계는 의외로 참 모호하구나.
기억에 남을 기록을 세워놓고 감사의 경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날, 이렇게 찜찜한 감사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