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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밍키 Nov 12. 2024

퇴사 말잔치

미친 물가 시대, 신환의 수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던데 일하는 사람이 느끼기엔 그다지다. 치아가 고장 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무슨 소리. 이렇게나 매일 육상선수처럼 뛰어다니는데 말이다.


해가 중천이 되면 밖의 기온이 어떻든 안은 후끈해진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우리의 훈김이 필터를 뚫고 나간 걸까. 인공적인 온기는 필요치 않아진다. 아니, 오히려 에어컨까지 튼다. 창문을 여는 것만으론 열기가 가라앉질 않는 것이다. 일교차가 크다곤 하지만, 11월에 에어컨이라니. 추우면 내복을 입고 안 쓰는 전기는 다 뽑아놓는 절약 김 선생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도 더운 건 참기 힘들다.


남향의 햇발이 잘 드는 건물이라 그럴 것이다. 우리 집과 같은 방향이다. 요즘 신혼집을 알아보고 있어서 이야기 논점이 일로 틀어진다. 정남향이 최고지만 옆으로 조금 굽어야 한다면 나는 남서향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오후 일조량이 많아야 광합성도 하고 기분도 함께 산뜻해질 테니. 문득 낮 시간에 집에 있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추위에 취약한 나도 이리 더운데 열이 원래도 많은 이들은 얼마나 더 그럴까. 몇 명은 구슬땀이 늘 이마에 맺혀 있다. 수족냉증은 자연치료가 된 것 같다. 풍수지리보다 더 긴요한 것이 있다. 바로 동네의 분위기이다. 동네 의원은 틀박이를 비롯해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대로변이라서 간판 보고 찾아오는 환자도 많지만 알음알음으로 오는 이의 수를 무시할 수 없다. 소개가 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자꾸 올 것이다. 이 동네를 어떠한 공기가 둘러싸고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다행히 요 동네 이웃들은 예의 바르고 심성이 착하다.

하지만 아주 당연히도 한 번씩 동티를 내는 위인도 존재한다. 입안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손겪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벌써 10년 가까이 일하다 보니 입 냄새보다 지독한 게 있다는 걸 터득했다. 해감내를 풍기는 인성은 어섯눈을 뜨고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은 첫인상에 느낌이 온다. 치과란 자고로 이(가) 상하고 이상하기도 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따라 다양한 모양의 헤살꾼들이 자주 보인다. 옥신각신 하다 보면 어느덧 해넘이께가 되어 있다.

공부하다 정신이 나간 괴짜처럼 함수 문제지를 몇 백 장 다발로 들고 보자마자 반말을 찍찍 해대던 어떤 환자는 처음엔 이상하기보단 아픈 사람 같았다. 존댓말을 못 배운 사람일까 동정이 들었지만 원장님 앞에서는 바로 반말 퇴치가 되는 것을 보고 절레절레했다. 혐오스러운 강약약강 유형. 자기보다 어리고 여자이고 의사가 아니어서. 문득 궁금했다.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적 환경적 이유가 있을까. 아님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걸까.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근데 그는 알까. 나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걸. 나도 동정을 받고 싶다는 걸. 신생아도 아니고 징징거리는 게 일과인 것 같다.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유와 쉼을 얻는다고 해도 그 행복이 얼마나 갈지 모른다. 그게 더 암흑이 될지도 모른다. 장담할 수 없는 인생. 아직 현실 감각이 남아 있다.


퇴근할 때면 늘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지만 자연 풍경이나 맛있는 커피 따위로 충전을 좀 하면 금붕어처럼 금세 이전의 힘듦은 까먹는다. 이렇게 또 퇴사 말잔치만 해본다. 아직 버틸만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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