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운 다음 날, 우리는 수산시장에 갔다.
마음 구석구석엔 아직 덜 가라앉은 감정들이 남아 있었다. 무거운 공기를 바꾼 건 남편이었다.
“우리, 회 먹을까?”
봄이 다 지나가려는 시장엔 도다리가 한창이었다.
간판마다 ‘제철 봄도다리’가 쓰여 있었고, 세꼬시도 옆 수조에서 투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수산시장은 늘 재밌다.
살아 있는 것들이 툭툭 튀고, 물 위로 비늘이 번쩍인다.
옆 수조에선 주꾸미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수조 옆의 갈색 바구니 같은 플라스틱 통에서 기어 나온 듯했다.
“아이고 또 나왔네. 얘네는 맨날 탈출 시도해.”
상인 아주머니가 장갑 낀 손으로 익숙하게 주꾸미를 집어 다시 담았다.
“진짜 싱싱하네요.”
너울가지 좋은 남편이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멍하니 수조를 들여다본다. 처음 보는 물고기들을 가리키며 “얘는 뭐야?” 하고 물으면, 남편은 해설자가 된다.
“쏨뱅이야. 튀겨 먹으면 맛있지.”
“쥐노래미야. 저건 살 발라서 구워 먹는 게 좋아.”
남편은 나물도 잘 알고, 물고기도 잘 안다. 식재료에 관한 그의 앎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애정처럼 느껴진다. 질투가 날 정도이다. 나한테도 이 정도의 관심 좀.
그를 볼 때마다, 살아 있는 동물도감 같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물고기도감이 펼쳐지고 남편은 그 안에 있는 지식을 척척 꺼내놓는다.
계절마다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어떻게 손질해야 더 맛있는지 늘 알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 시장을 걷는 건 계절을 배우는 일 같다.
우리는 도다리도 좋아하고, 세꼬시도 좋아한다.
하나만 고를 수 없어서, 결국 둘 다 샀다.
집에 돌아와 남편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식탁 차리기에 나섰다. 된장과 고추장을 반반 섞어 쌈장을 만들었다. 참기름, 마늘, 깨소금까지 넣은 뒤, 휘휘 저었다. 나도 옆에서 도운다. 설거짓거리를 지딱지딱 처리하고 만들어진 음식들을 상에 가져다 놓는다.
간장, 고추냉이, 쌈장이 준비되었고, 그 옆에는 도톰하고 탄탄한 도다리회, 얇고 투명하게 썰린 세꼬시가 나란히 놓였다.
남편이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없이 주방으로 가더니, 냉장고에서 갓김치를 꺼내고, 물에 헹궈 가지고 온다.
“이거랑 같이 싸 먹으면 더 맛있을걸.”
갓김치 위에 도다리회를 올리고, 쌈장을 살짝 얹어 내게 건넸다. 나는 받아 들고 한입에 넣었다.
짭짤하고 아삭한 갓김치, 고소한 쌈장, 부드러운 회.
그 맛은 우리가 함께 찾은 균형 같았다. 남편의 팡파짐한 뱃살이 괜히 찐 살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또 한 쌈을 싸 주었다. 이번엔 세꼬시였다. 세꼬시는 가늘게 썰린 살을 뼈째로 삼켜야 한다. 그 뼈째회가 나 같다고 느꼈다. 곧잘 부서지고, 너무 많이 생각하며, 결국엔 내 말에 내가 찔린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고, 그만큼 진심인 편이다.
도다리는 통통하고 두툼하다. 한 점만으로도 입 안이 꽉 찬다. 뚝심 있고 든든해서, 옆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는 자주 출렁이지만, 그는 잘 가라앉는다.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두 회처럼, 우리는 다르지만 나란히 한 접시에 놓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계절을 함께 씹어 넘기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맛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된다. 다른 식감이지만, 같은 제철. 우리도 그랬다.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만, 한 접시에 나란히 있을 수 있는 사이. 조금 다르고, 그래서 더 어울린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받은 뼈를 꺼내 매운탕을 끓였다. 무와 대파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한 국물을 냈다.
회로 시작하여 매운탕으로 마무리한 저녁식사.
매운 국물 한 숟갈이 속을 데우고, 봄의 잔기운까지 데워주었다.
아직 봄바람이 품을 파고 기어든다. 아침저녁으로 두꺼운 겉옷을 입는다. 하지만 낮의 햇살은 점점 진해지는 중이다. 여름이 차차차차 오고 있다. 싸움도 있었고, 화해도 있었다. 세월에 속아 또 산다는 게 이런 걸까.
도다리도 세꼬시도 제철을 지나지만 우리의 봄은 오늘에서야 막, 제철을 맞이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