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안방 서랍장을 골랐던 건 두 달 전의 일이었다.
미리 사둔 화장대와 같은 브랜드, 같은 라인.
화장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 늘 아쉬웠고, 물건들을 깔끔히 정리하기에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 옆에 서랍장 하나만 들어오면 안방은 완벽한 모습이 될 것 같았다.
주문은 남편 아이디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오매불망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남편은 말했다.
“이번 주에 와.”
“곧 온대.”
“물량 밀렸대.”
“이번 주에는 꼭 온대.”
그 말을 계속 믿고 애가 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두 달 넘게 오질 않는다. 이제는 정말 고객센터에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주문번호 좀 알려줘. 따지려는 거 아니고, 그냥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런데 그는 이상하리만치 거부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왜 그래. 그냥 기다리면 되잖아.”
“내가 전화해 봤어. 온대. 오겠지.”
그때부터 이상했다. 회피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분명히 무언가 감추고 있었다. 나는 거듭 차분히 말했다.
“정말 확인만 할게. 싸우고 싶지 않아. 그냥 알려줘.”
그는 화를 냈다.
“나도 안 와서 스트레스받아. 나도 답답하다고!”
내가 건넨 기회를 뻥 걷어차는 데 그치지 않고 나를 몰아붙인다. 뭐든 시기를 놓치면 큰 화를 부른다. 남편은 내 손을 잡지 않았다.
“아 그냥 짜증 나서 취소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인내의 임계점이 넘어갔다. 그건 신뢰를 절단시키는 소리였고 내 존재를 지우는 말이었다. 좁은 화장대에 모든 화장품을 올려두고 이쁘게 정리할 생각으로 두 달을 기다렸다. 하지만 상의 없이 취소를 했다. 나에 대한 존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붙들던 이성이 무너지고 미친 것 아니냐며 욕설을 내뱉었다.
왜인지 그는 그제야 조목조목 실토한다.
“사실 2~3주 전에 취소했어. 너 호주 가는 거 경비에 보태주려고 취소했고, 할부로 다시 결제해 놨었어. 오늘 온다고 연락 왔다는 건 정말인데... 안 와서 스트레스 받아서 결국 취소한 거야. 돈 없다고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어. “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 이미 기만을 당한 이상 그것도 다 진실로 들리진 않았다. 할인행사가 끝나서 그전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할부 결제를 해놨다니. 계산머리가 잘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엉터리박사였다.
무엇보다, 그 오랜 시간 ‘곧 온다’고 말해왔던 날들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에 숨이 턱 막혔다. 조금 전 되려 내가 이상한 듯 화를 내고 자신도 같은 피해자, 불편한 중간자인 척 연기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나를 위한 거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면죄부라도 받아지나.
서랍장과 함께 내 신뢰와 기대가 몽땅 취소된 기분이었다. 얼마나 기다리고 상상해 왔는데. 서랍장의 크기만큼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나는 망가졌고, 망가진 마음은 그대로 분노로 바뀌었다. 서랍장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놓인 진심의 문제였다.
남편은 내 마음이 안중에 없는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떳떳하고 오연한 목소리로 그저 “반성할게” 같은 짧은 대답만 내놓는다. 그것은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다. 아마도 내가 서랍장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화를 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타오르는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나는 말했다.
“이혼할래.”
홧김이 아니었다. 그는 거짓말 전과가 5범쯤 될 것이다. 오랫동안 쌓였고 모든 믿음이 무너졌다. 천야만야 깎아지른 낭떠러지에서 낙하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울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짐승처럼, 아파트 민원이 걱정될 만큼 서럽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