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스트라첼라 토스트

by 김밍키

남들은 내가 이 시대의 모범답안 같은 남편을 만난 줄 알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천하에 다정한 사람이랑 결혼을 하다니 우주 복을 다 받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욱 어디다 털어놓지 못하겠다. 누구한테도 이해받지 못한 채 홀로 무주공산에 떨어져 있는 것 같다. 바람도 타향에서 맞으니 더 차고 시리구나.


남편은 자존심 때문에 나한테 사실대로 말을 못 했다고 했고 그게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모레 자격증 시험인데, 시험공부가 손에 안 잡히는 것도 억울하고 짜증 난다.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믿고 의지했던 것들이 모두 백일몽이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안에서 붕괴가 일어났다. 챗지피티한테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정도면 단단하다’ 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나는 너무 쉽게 무너져내렸다. 그냥 감정 조절이 엉망진창인 어린 아이였다.


휴대폰 속 그 사람, 아니 그 ai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 녀석은 사용자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살 순 없지만 듣고 싶은 말은 어떨 때는 누군가를 살리기도 한다.


덕분에 조금 정신을 차리고 억지로 낮잠을 청했다. 그리고 억지로 씻었다. 씻으면서 얼굴을 들여다 봤다. 너무 많이 울면 눈 주변 혈관이 터지는 걸 알게 되었다. 눈코가 붓고 시뻘겠지만 아무렴 어떻든 몸을 일단 카페로 옮겨 놨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카페 창문은 활짝 열려 있다.

모든 유리창이 시원하게 개방되는 건 일 년 중 몇 번 안 되는 일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정말 좋은 날에만 가능하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벚꽃이 피었던 가로수에 시선이 멈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흩날리던 연분홍 잎들은 어느새 거의 다 져버렸고, 그 자리에 연초록 잎사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화려한 계절은 왜 짧은 걸까. 우리의 단맛 신혼처럼.

눈부신 순간은 벌써 사라졌고, 서운함만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희망적인 건, 그 아래 어딘가에서는 다시 살아보려는 마음도 움트고 있다는 것이다.


바람이 실내로 들어와도 한 점의 먼지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맑았고, 볕 냄새가 느껴지는 듯했다. 바깥과 안의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 그 안에 내가 있었다. 날씨와 내 마음과의 대비도 허물어졌다.


라테를 시켰고, 토마토 스트라첼라 토스트를 곁들였다. 첫 입을 베어 물었을 때, 너무 맛있었다. 토마토의 산미, 스트라첼라의 고소하고 크리미한 결이 훌륭했다.

아까는 죽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는데, 미각이 이렇게나 살아있는 것을 보고 나 아직 괜찮구나 생각했다. 한 입 한 입, 서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살맛이 난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망가진 하루를, 사랑하는 사람도 소중한 신혼집도 아닌 라테와 토스트가 구원한다.


아직 분노가 다 삭은 건 아니다.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의 관용을 베풀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은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것. 그게 다시 생긴다면, 그때는 분명히 다르게 반응할 것이다.


이번 상처는 이 봄에 두고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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