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신혼집으로 오기 전에는 부모님 따라 자연스럽게 다니던 교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곳에서는 스스로 골라야 했다. 새로운 동네에서의 첫 교회를 찾아 나섰다.
교회를 결정하는 일은, 마음의 집을 고르는 일과 비슷했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할 누군가를 고르는 일처럼 중요했고 조심스러웠다.
첫 번째로 간 교회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웠다. 걸어서도 닿을 거리라 마음이 먼저 열렸다.
예배당은 크고 세련됐고, 설교는 놀랄 만큼 귀에 쏙쏙 들어왔다.
“목사님 딜리버리 굉장히 좋으신데?”
이 교회에 정착하면 남편과 내가 성경을 잘 알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눈앞에 계시지 않았다. 영상으로만 등장하셨다.
지점이 여러 개인 대형교회라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럴 거면 집에서 유튜브로 예배드리는 것과 진배없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스크린으로는 관계가 이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말씀이 좋아도 화면으론 숨결이 뚫고 나오지 못한다. 내겐 같은 공기를 나누며 말씀을 듣는다는 실감이 필요했다. 어딘가 마음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두 번째 교회는 차로 30분 가까이 떨어져 있는 곳이다.
가는 길이 조금 멀었지만, 주변에 재래시장도 있고 예쁜 카페도 있어서 ‘예배 후에 산책하듯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교회 근처의 길가 담벼락 위로는 매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낙화유수를 즐기기에 맞춤의 교회였다.
목사님이 거의 모든 순서를 직접 인도하셨고 설교도 울림이 있었다.
그런데 말씀에 이르기까지의 순서가 너무 길고 지루했다. 그날은 성찬식에, 권사·장로 임직식과 퇴임식이 같이 있었고, 대예배 시간 내내 ‘수고하셨다’는 격려가 이어졌다. 보통은 오후에 따로 하지 않던가. 그들만의 행사를 따분하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말씀은 마지막에 겨우 닿았다.
주차 공간도 부족해서 예배 중간에 남편이 차를 빼러 나가야 했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으신 아주머니 한 분이 캡모자를 눌러쓰고 다리를 꼬고, 설교 내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대각선에 앉은 아저씨도 예배드리는 모습이 불량했다. 그런 모습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나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그날따라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했던 걸까.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들이 많았다.
세 번째 교회는 거리도 가깝고, 외관도 참 예뻤다.
무엇보다 1층의 베이커리 카페가 향기로웠다. 막 들어섰을 뿐인데 고소한 빵 냄새가 나를 반겼다.
사람이 주는 온기와는 또 다른, 공기에서 느껴지는 환대랄까.
입구에서 맞아주는 안내팀이 과할 정도로 친절했고, 예배가 끝난 뒤엔 주먹밥도 하나씩 나눠주었다.
우리는 예배 후 1층 카페에 앉아 찬양 인도하셨던 부목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청귤차, 남편은 아이스아메리카노. 음료도 주먹밥도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다 좋은데, 정작 중요한 말씀은 어딘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목사님은 설교 전 전도 행사 이야기를 오래 하셨다. 그리고 도중에 누군가에게 “왜 칠판을 안 갖다 놨냐”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 순간, 작은 경계심이 올라왔다. 남편과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보고 눈치를 살폈다. 듣는 사람이 다 민망한 그 장면은 평소에 목사님이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하실지 그려졌다.
셋 다 좋았고, 셋 다 조금씩 아쉬웠다.
역시나 중간 찾는 게 제일 어렵다. 설교가 좋으면 교감이 부족했고, 사람이 좋으면 메시지가 흐릿했다. 말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낯선 동네에서 낯선 교회를 찾아 나선 봄.
서툴고 외로운 이 시간도 믿음의 일부일까.
다음 주에도 우리는 벼름벼름하며 또 다른 예배당 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부활절이 지나고, 봄도 한결 깊어졌다.
그즈음 문득 떠올랐다. 고난주간은 언제나 봄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겨울은 물러났지만 봄이라 하기엔 이른,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
선뜻 마음을 둘 곳은 아직 없고, 까닭 모를 헛헛증까지 난다.
생명으로 나아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침묵과 아픔의 계절처럼 교회를 찾아 헤맨 이 봄도 어쩌면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이 머뭇거림도 나름의 기도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는 마음 놓고 앉을자리를 만나게 되겠지. 그리고 난만히 핀 봄이 성큼 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