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든든한 봄

by 김밍키

신혼집에 들어온 지 달포가 되었다.

이 동네엔 아직 친구가 없다. 눈에 익은 간판도, 편하게 불러낼 사람도 없다.


그래도 봄이 왔다고 하니, 혼자라도 잠깐 나가보기로 했다.


바깥은 벚꽃이 한창이다. 그런데 공기는 아직 겨울처럼 매섭다. 꽃은 피었지만, 마음이 놓일 만큼 따뜻하진 않다. 겹겹이 껴 입고 나선 길 위로 벚꽃 잎이 살랑살랑 흩날린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하고 창밖을 바라봤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예쁘게 나온 컷을 골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꽃도, 커피도, 디저트도 다 예뻤다. 이상하게 조금 쓸쓸하긴 했지만.


잠시 뒤, 호주에 사는 친한 친구에게서 디엠이 왔다.

“호주에 와서 나랑도 커피 마시자. 내가 맛있는 카페 데려가고 사줄게.”

마침 나는 일을 쉬는 중이다. 또 이런 기회가 언제 올까 싶기는 했다. 일단은 생각해 보겠다고 답을 보냈다.


남편은 퇴근 후, 내가 있는 곳으로 데리러 와줬다. 추워서 오래 걷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장안문 근처에 들러 밤벚꽃을 구경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연분홍이 쪼로니 내려앉아있다.


화홍문 앞은 은파로 번득인다. 하천에 비치는 꽃잎이 조용히 흔들린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봄이 흘렀다.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등이 그의 따뜻한 체온에 닿았다. 얼었던 손이 조금씩 녹으니 봄이 온 것이 더 실감 났다.


꽃길을 걷던 중, 나는 무심코 말했다.

“아참, 아까 임예한테 연락 왔는데… 호주 놀러 오래.”

그 한마디는 다음 날 시드니 항공권이 되었다.


또 마음만 품고 흐지부지 지나갔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남편은 그날 밤부터 시드니 정보를 샅샅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음 날엔 근무 중에도 틈틈이 항공권을 검색했고, 하루 만에 예약을 마치고 보험 가입까지 해치웠다. 그야말로 불꽃같은 추진력이었다.


마침 곧 만기 되는 내 적금과, 우리 부부가 함께 모으던 공용 목돈까지 탈탈 털었다. 그 돈은 원래 ‘나중에 둘이 해외여행 가자’며 따로 모아두던 거였다.


“괜찮아? 그 돈, 우리 같이 쓰려고 했던 건데…”

내가 망설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해외여행 안 가도 돼. 국내가 좋더라고.”

신혼여행 후 줄곧 해외여행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다.

나의 터럭 같은 한마디에 더럭 모든 것을 반납하는 남자. 아주 기쁘게 기꺼이.


“호주 가면 코알라 볼 수 있는 거지? 기념품으로 쿼카 인형 사다 줘! 웜뱃도 있으면 웜뱃까지 꼭!”

나보다 더 들뜬 건 그였다. 이미 코알라 인형을 품에 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오달진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은 쿼카를, 몸매는 웜뱃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여행을 내가 가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만개한 벚꽃보다 더 활짝 입꼬리가 피었다.


이 동네엔 아직 친구가 없다.

벚꽃은 피었지만, 아직 겨울처럼 차갑다.

그럼에도 나는 외롭지 않았다.


낯선 거리로 나선 쓸쓸한 발걸음이 시드니 항공권의 물꼬가 되다니. 그것은 내게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다. 지금 이 동네에서 가장 든든한 봄은 남편이고, 그런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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