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미나리

by 김밍키

시장에서 사 온 미나리를 찬물에 씻는다.

손이 시렸고, 손등은 물에 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몇 십 년 봄마다 이걸 했겠구나.

요즘 무언가를 직접 해보고 나서 ‘그때 엄마가 그랬구나’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남편은 옆에서 조용히 칼질을 한다. 그는 마늘을 썰다가 갑자기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듯 초점없이 정면을 바라본다. 평소에 사색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놀라서 물었다.


"왜 그래?"


"... 엄마는 우리 위해서 늘 이렇게 살았구나 싶어서.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 그러네."


착하고 감수성 풍부한 남편.

우리는 한 부엌에서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부엌은 원래 그런 곳인 건가.


눈물의 미나리는 그날 저녁, 알리오올리오의 고명으로 올라가 빛깔과 맛을 더해주었다.



며칠 전, 엄마의 환갑잔치를 했다. 잔치라기보단, 우리만의 작고 소박한 축하였다. 엄마는 그날도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우리의 신혼집에 도착했다. 그 시간에 식당 모시고 가긴 어려워서 우리 집으로 초대를 한 것이다. 생일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는 딸과 사위를 보고, 엄마는 조금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벽 한쪽에 축하 플래카드를 걸어놨고, 식탁 위에는 식사를 준비해 놨다. 남편이 미리 전복밥과 미역국을 만들어두었다. 나는 꽃다발과 함께 케이크, 손 편지, 축하금 봉투를 드렸다.


엄마는 한 숟갈 한 숟갈, 조용히 야식을 먹었다. 다 드시고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꽃다발, 카드, 케이크를 마치 어디에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평소엔 사진에 별 관심 없던 엄마가 이렇게 열성적으로 찍는 모습이 낯설었다. 진작에 많이 해드릴 걸 싶었다.


엄마는 환갑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그냥 생일이라 생각했을 뿐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야식으로 끼니를 채우는 환갑의 밤. 지금껏 노근노골 살아온 시간을 축하받아 마땅한 날에조차 식사를 거르며 일하고 있었던 엄마. 무릎 통증으로 진통제를 먹어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힘든 내색이 없다. 그저 쿠팡으로 무릎보호대 좋은 것 주문해 놨다고 웃으며 자랑하는 엄마.


그렇게 엄마의 닳고 닳은 연골로 나는 신혼집의 크고 작은 것들을 채웠다.




며칠 후, 아빠께 전화가 왔다. 나는 커피에 카스텔라를 곁들여 간식을 먹고 있었다.


"딸, 집에 언제 와?… 아니, 보고 싶어서...."


요즘 아빠는 이런 전화를 자주 걸어온다. 한집에 살 때는 그다지 소통이 없었지만, 막상 몸이 멀리 떨어지고 보니 내가 그리우신가 보다.

전화를 끊으며 “사랑해”라고 한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먹고 있던 카스텔라가 목에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 부드러운 카스텔라조차 삼키기 어려웠다.


통화는 끝났지만 아빠의 말은 귓가에 계속 남았다.

독립해 보니, 부모님의 존재가 전보다 더 크고 깊게 다가온다. 같은 집에 있을 땐 잘 몰랐다. 그저 늘 거기 있는 사람처럼, 다정함도 수고도 모두 지나쳤다.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은 때로 고요한 노동이고, 반복되는 손놀림이고, 티 내지 않는 헌신이라는 것을. 그걸 알기 위해, 우리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되는 걸까.


계절마다 피어나는 마음이 있다면,
올봄의 제일 처음엔, 아마도 부모님이 있었다.
부엌 한구석, 그 모든 작고 고요한 순간 앞에서 나는 한 줌의 존경을, 조용히 마음속에 올려본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고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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