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제철은 언제일까

by 김밍키

오늘은 내가 밥을 해보기로 했다.

시장에서 사 온 각종 나물들이 안 그래도 비좁은 냉장고를 더 비좁게 했기 때문에 작정하는 마음으로 나섰다.


냉이와 유채를 꺼내 각각 된장국과 무침을 만들었다. 냉이 손질에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과는 좋았다. 두 가지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요리도 별것 아니구나 하고 자신감이 붙는다. 하다 보면 손이 익고 속도도 빨라지겠지?


냉이 뿌리를 깨끗하게 닦아내는 작업이 너무 귀찮아 투덜대면서도 봄 냄새를 이렇게까지 풍겨주는 나물은 또 없었어서 내심 좋기도 했다. 미워할 수 없는 나물이랄까.


남편은 퇴근해 돌아왔고 나는 상을 차렸다. 치킨이 있어서 밥은 일 인분만 나눠 먹자 했는데, 새큼한 유채무침과 구수한 냉이된장국이 밥 한 공기씩을 금세 비우게 했다. 입맛이 돌았다. 국물이 시원하고 구수해서 몇 번 다시 퍼먹었다. 빈 접시가 꼭 개가 핥은 국사발 같을 정도로 우리는 남김 없이 먹었다. 남편은 연거푸 맛있게 잘했다고 칭찬한다. 역시 봄 상으로 냉이를 올리길 잘했다. 그 국 한 그릇에 따뜻한 하루가 녹아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핸드폰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닫고 통화하는 모습이 수상하다.

자리에 돌아온 남편에게 누구냐고 묻자, 남편은 머뭇거린다.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어. 심근경색 초기래. 앞으로 와파린을 계속 드셔야 한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애써 침착하게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가 보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남편이 덧붙였다.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모르는 체해줘. 괜히 걱정 끼치기 싫으신 거 같아.”


식탁 위는 잠시 침묵이 돈다.

남편이 또 조용히 말했다.


민경아,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 우리 엄마아빠 나이가 있으시니까....

마음의 준비... 나는 마음의 준비를 ‘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눈물이 먼저 났다. 대비라는 게 정말 가능한 걸까. 슬픔이 예고되면 덜 아픈가. 그저, 그날이 올까 봐 두려운 마음만 들었다.


남편은 늦둥이 막동이다. 시아버님은 올해 팔순이시다. 시부모님의 연세가 적지 않다. 나이가 있으시니 이런 상황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막상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으니 이상하다.



결혼을 준비하던 어느 날, 시어머님과 함께 혼주 한복을 맞추러 갔었다.

“할머니, 이 저고리 색상이 얼굴에 더 화사하게 올라오네요.”

악의가 없는 한복실 선생님의 목소리.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나는 순간 굳었고 마음에 걸렸다.


본식 날, 원판 사진을 찍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작가님이 시아버님을 향해 “할아버님은 이쪽으로 오시고요—” 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아주버님이 바로 정정했다. “저희 부모님이에요.” 그때의 어머님 아버님 표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나는 기억한다. 조금 놀라신 눈빛, 입꼬리에 스쳐 지나간 묘한 침묵.


어머님이 내게 다가와 조용히 안아주셨던 적이 있다. 말없이, 꼭.

아버님은 한 번, 전화를 끊기 전 “며느리 사랑해”라고 하셨다.

그 두 가지 기억이 이마 앞에서 빠르게 지나갔고, 볼을 적셨다.



나는 오래오래 그 사랑을 받고 싶다. 그들의 따뜻한 말과 손길을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 나도 반찬을 해드리고, 짧은 여행을 함께 다니고,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을 더 많이 나누고 싶다. 그런 평범한 날들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받은 사랑을 되새기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생각하며, 나는 또 식탁 위에서 사랑과 이별을 함께 배운다. 아직 오지 않은 그날이 막연히 두렵다.


하지만 나는 다짐한다. 이 소중한 마음이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사랑하는 이들과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껴안고, 자꾸만 기억하기로. 제철에 피는 마음은, 제때 사랑하고 즐기기로.


제철 음식처럼, 어떤 마음은 때가 와야만 꺼내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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