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요즘 많이 놓는다는 스탠바이미도 없다.
결혼하기 전부터 우리는 신혼집에 TV를 놓지 않기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합의했다.
나는 원래 TV뿐만 아니라 유튜브 영상도 거의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빠지면 정신줄을 놓고 본다. 집중력이 좋은 건지, 중독에 취약한 건지 모르겠다.
그런 나의 특징을 미리 파악한 남편은 TV가 없어야 집에 대화가 생기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영민한 결정이었다. 밥을 먹는 시간에는 오롯이 우리 둘에 집중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 식탁에 앉았다.
창밖을 보니 아직도 바깥이 밝다. 해가 길어졌다는 건 몸의 어느 부분들이 먼저 알아챈다. 기분이 약간 더 괜찮아진다.
봄은 그렇게, 말없이 기분을 바꿔놓는 계절이다.
쑥을 다듬을 때부터 주방에 퍼진 향이 유난히 봄 같았다. 묵직하고 씁쓸한 냄새 속에 새순 같은 기운이 들어 있다. 쑥국과 나물 반찬, 따끈한 밥으로 저녁을 먹는다.
이 고요한 시간이 정말 좋다.
밥을 다 먹고, 그릇을 씻고, 상을 치운 뒤에 우리는 식탁에 다시 마주 앉았다. 물 잔 두 개가 덩그러니 남은 식탁 위에서 작은 회의를 열었다.
결혼하고 첫 가족회의였다. 앞으로 매주 정한 요일과 시간에 회의를 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의 국회의장은 나다. 주제는 청결. 남편은 내게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했다. 상판을 닦은 후에도 뭔가가 남아 있고, 커피를 마시다가 남으면 꼭 뚜껑이나 덮개로 닫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금 당황했고, 억울했다. 내가 남편이 어지럽힌 뒤처리를 얼마나 하고 다니는데! 그래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경청했다.
그리고 주제와는 다를 수 있지만 나도 하나 의견을 꺼냈다.
남편은 대기전력을 아낀다며 전기포트와 전자레인지, 인터넷 공유기, 청소기 콘센트까지 쓰고 나면 모두 뽑아 놓는다. 심지어 주말에 잠깐 본가에 갈 때는 세탁기 건조기를 다 뽑아놓고 두꺼비집의 전원까지 내려놨다.
집에 돌아오고 복구해놓는데, 얼마나 귀찮던지. 세탁기 건조기 인터넷공유기 두꺼비집은 살면서 전기 연결구를 한 번도 건드려본 적 없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미덥잖은 행동거지를 고쳐주길 목에 힘주어 요청했다.
“콘센트를 그렇게 다 바로 빼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꽂아 쓰는 집은 없을 거야.” “그냥 빼놔서 안 좋을 거 없잖아.”
남편이 지지 않고 말한다.
“원래 집에서도 다 빼놓고 다녔어?”
“응, 그럼”
결혼을 하고 나랑 사는 집에서 갑자기 유난을 떠는 게 아니라 이전부터 이어져 온 생활습관이라니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달간의 신혼생활을 돌이켜 봤을 때 그걸 다시 꽂는 건 거의 내 몫이었다. 너무 귀찮고, 그 몇 초의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많아 봤자 100원 정도의 대기 전력 비용을 아끼자고 소중한 시간을 버려야 하는 게 싫었다. 확실히 손해였다.
위험 사고에 대비할 수도 있다고 설득하지만, 내 스트레스가 더 위험할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어서, 매번 빼고 끼우는 일이 도무지 익숙하지가 않았다.
소리 지르지도, 다투지도 않았지만 서로의 말투가 살짝 짧아졌고, 짜증이 섞였다.
우리는 결국 기준을 정했다.
‘3일 이상 집을 비울 땐 세탁기, 건조기 포함 모든 콘센트를 뽑고, 5시간 이상 외출 시에는 인터넷, 안방, 청소기 콘센트만 뽑는다’.
실행 가능하고 기분 상하지 않는 선까지로 정했다. 솔직히 내가 조금 더 양보했다고 생각한다.
회의는 계속되었다.
남편은 중간부터 참을성을 잃었다.
“얼마나 더 해?”, “이제 끝나가?” 하며 보챘다. 마트에 데려간 어린 아들마냥 회의에 집중을 안 하고, 일어나 주방을 왔다 갔다 했다. 국회의장은 그에게 앉으라고 분부했고 결국 새 조항 하나를 더 만들 수밖에 없었다.
‘회의를 방해할 경우, 침대 사용 이틀 박탈’
엉덩이가 가벼운 회의 참석자는 유들유들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우리의 첫 번째 의안은 그렇게 가결되었다.
가끔은 생활 습관이 안 맞아 짜증 나는 부분도 생기지만 그래도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조율하고 있었다. 회의를 하자고 먼저 말한 건 나였다. 말 안 하면 쌓이는 것들이 자꾸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은 조심히 하기로 하고, 듣는 태도는 더 잘해보기로 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결혼은 사랑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말을 우리도 조금씩 실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함께 맞춰나가기로 한 것도 사랑의 다른 모습이다. 창밖의 빛은 어느새 다 누워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았던 하늘이 저녁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식탁 위 물 잔엔 남은 빛이 조용히 들러붙어 있다.
우리는 이제, 둘이서 회의하는 가족이다. 아람치를 챙기지 않는 그야말로 한배를 탄 사이.
냉이나 쑥처럼 약간은 쌉싸름하지만 결국 기운을 북돋는 맛이 있는, 봄다운 회의였다.
이렇게 소소한 다름에 귀를 기울이고, 작은 불편도 외면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의 봄을 조율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