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맛 신혼

by 김밍키

볕이 한결 눅진해졌다. 집 안 깊숙이 들어온 햇살에 장을 보러 나가기 전부터 낌새를 느낀다. 그리고 역시나 야채 가게 진열대에는 봄나물이 올라와 있다. 그것은 우리 집 식탁에도 봄이 올 거라는 신호탄이었다.


남편은 나물에 진심인 사람이다. 같이 마트에 가면 나는 그냥 풀떼기로만 보이는 것들 앞에서 “이건 방풍나물이고, 이건 취나물이네” 하고 척척 말한다.

나는 별안간 그의 채소 지식에 압도 당하고 만다. 시장에 데려온 꼬마처럼 멍하니 옆에 서 있을 뿐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만물박사는 이미 오늘의 식탁 계산이 끝났다는 듯 주문도 술술한다.

“두릅 한 팩이랑 유채, 달래, 세발나물 한 근씩 주세요.”



그날 저녁, 그릇마다 봄이 깔렸다.

식탁 위에는 연둣빛이 은근하게 퍼졌고, 나는 젓가락을 들기 전부터 무엇을 먼저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미 배가 부른 것 같기도 했다.



결혼 후 한 달이 되어간다.

남편은 늘 퇴근하고 돌아오면 또다시 밥상 차리기에 바쁘다.

나는 일을 쉬고 있는 중이라-나름 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지만-양심이 찔린다.

그는 마치 흑백요리사처럼 한쪽에선 북엇국을 보글보글 끓이고, 다른 쪽엔 나물들을 나열해 놓는다.

엄마 말고도 퇴근하고 밥 차려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줄 몰랐다. 그게 남편이라는 게, 아직 낯설다.


남편의 흥정 없는 포용력이 꼭 봄 같다고 느낀다.

자기가 이만큼 했으니까, 나에게 그만큼을 바란다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유리하려고 수작을 부리는 일이 없다.

나는 제철 음식으로 차려진 집밥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

유채꽃도 진달래도 예쁘지만, 나물이 더 좋다.

나물 한 젓가락 넣었을 뿐인데, 입 안 가득 봄이 터진다.저작을 반복하면 안에서 봄향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 같다. 힘을 숨기고 있던 고요한 것들에게 어떠한 반격을 당한다.


온 초록색으로 신혼 식탁의 마수걸이를 하였다. 왠지 시력까지 맑아지는 기분에 마음의 눈이 활짝 뜨인다. 그렇게 나는 남편 덕분에 겨울과 봄 사이 아주 들이댓바람부터 상춘객의 마음으로 살았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봄이 이렇게도 요란하고 새삼스럽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