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제철별미라도

by 김밍키

남편은 담배를 끊기로 약속했었다.
그 다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그래서 더 믿고 싶었다.


원래 많이 피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어쩌다 가끔 피는 것 같았다. 연애하면서 냄새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결혼을 하면서는 완전히 금연하기로 약속했다. 이건 내가 양보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그런데 방 안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전자담배 냄새를 맡고 말았다. 나는 담배냄새 맡는 데는 개코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숨길 수 없는 냄새가 모든 걸 말해주었다. 감정도, 신뢰도 무너졌다.
남편은 처음엔 아니라고 발뺌했다. 사실을 말하면 참작하여 형량을 줄여준다고 하니 결국 이실직고를 했다. 


나는 화가 났지만,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신혼이니까, 아직은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같은 냄새가 또 났다.
버리기 전에 아까워서 한 번만 더 폈다고 했다.
내가 어제 품었던 실망과 용서를, 가볍게 여겼구나.

남편은 나와의 약속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화도 내기가 싫을 만큼 화났다.


마음 한편이 그대로 눌린 채로 우리는 당진으로 봄소풍을 떠났다. 4월-5월, 한철밖에 맛볼 수 없다는 실치회를 먹으러 가자고 했었기에 냉전은 대충 덮어놓고 나간 것이다. 이것 때문에 토요일을 그냥 버리기 싫었다. 나름 제철 미식가로서 기회를 놓치기 싫었고 기분 전환을 하고도 싶었다.


신도시의 마천루를 지나, 건물 하나 눈에 걸리는 곳 없이 탁 트인 도로를 달렸다. 답답하던 마음이 잠시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진짜 봄을 보았다. 산자락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할머니의 호호백발처럼 우아했다. 벌써 등장한 조팝나무의 알알이 터진 팝콘들은 귀엽고 예뻤다.

그렇게 감탄사만 반복하며 한참 달려 도착한 장고항의 시장. 저공비행 하는 갈매기들을 보니 놀러 온 기분이 더 들었다.


줄지어 있는 음식점 중 하나를 골라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정갈하게 차려진 회 한 접시가 나왔다.
그런데 막상 입에 넣은 실치회는,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싱그럽고 신선한데… 어딘가 낯설고 물컹한 느낌. 
아마 그 순간 내 표정이 조금 굳었을지도 모른다. 기대를 많이 하고 온 탓도 있을 것이다. 
남편은 계속 눈치를 봤나 보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다 먹고 카페로 향하는 길, 나는 조수석에 앉아 영상을 하나 봤다. 작은 화면 속에서 누군가가 무대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 예뻤다.
노래도 표정도 춤도, 말도 안 되게 빛나서 마치 오래된 꿈 하나를 들춰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 생각이 스치자, 가슴이 이상하게 저려왔다.


눈물이 났다.
슬퍼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 예뻐서. 그리고 더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어쩐지 아쉽고 슬펐다. 마치 내 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나지 말지.

아름다운 걸 보면 가끔 사람은 그렇게 울컥한다.
햇살이 막 눈부셔질 때처럼, 마음이 이유 없이 젖어드는 순간이 있다.


운전 중이던 남편이 내 얼굴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왜 울어~”
장난처럼, 나를 달래 보려는 말투였다.
그 말이 미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진짜로 들여다보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다른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화제를 돌려보려는 이유인 건 알지만 내 감정은 그 안에 끼지 못했다. 아침의 일처럼 마음이 그냥 대충 덮인 것 같았다.


“내가 왜 우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니까 왜 우냐고 물었잖아!”

화 낼 타이밍은 아닌데. 양관식이랑 결혼한 줄 알았는데 이 남자, 완전 하남자였다.


그 이후 차 안은 조용했다.
한 시간 넘는 거리,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 가기로 했던 카페도 그냥 지나쳤다.
라테 한 잔으로 풀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감정은,
아무 말 없이 어긋났다.


집에 돌아와서 싸움은 다시 붙었다.

“공감 잘하는 남자 만나지 그랬어. 아이돌 보다가 우는 건 사실 난 이해하기 힘들어. “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건 내 마음을 짓밟는 말이었고 나를 이상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가장 가까운 남편조차 내 마음을 지지하지 않으니 자기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결국 그는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갔고, 나는 이 집에 혼자 남았다. 우리 둘이 함께 시작한 집인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모든 풍경이 봄기운을 품고 있는데 내 마음은 아직 풀리지 않는 기온처럼 겨울 끝자락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신혼이겠지.
예쁘게 찍힌 사진만으론 알 수 없는 신혼의 진짜 얼굴.
어제까지 너무 좋았다가도 오늘은 너무 미워지는. 서로를 더 잘 알아가려다 마주하는 벽들. 그 벽에 머리를 박고 다시 뒤로 물러난다.


당진에서 먹은 실치회처럼, 누군가에게는 봄이 오면 꼭 먹어야 할 별미지만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는 맛일 수도 있구나.
신혼이라는 계절도 그렇다.
제철이지만, 때로는 입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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