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개인주의자선언 by. 문유석

by Sophia

저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개인주의적인 사람, 지하철에서도 사람이 없는 곳으로 최대한 피해 앉는 철저한 개인주의자.


나와 같은 사람이지 않을까?


'저자는 판사니까, 아마 나보다 더한 인간의 밑바닥을 봐왔겠지.. 그러면 나의 이런 개인주의,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경찰관으로 근무한 세월만큼 타성에 젖어있는 내가 근무 중 흔하게 보는 112 신고는 보이스피싱 신고이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속임에도 사람들은 수백 수천만 원 피해를 입는다.

문득 이런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왜? 대체 왜?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데 대체 왜?"


이런 세상에서 불에 홀려 다가가는 부나비들을 어리석다 비웃고만 있으면 될까. 불에 덮개를 씌워 더 이상 타 죽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p.140


당한 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될까.

제도적 예방책, 사법적 장치들을 통해 그들이 타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옳은 세상이다.

그럼 나는 과연 그들이 어리석다고만 생각했을까.

그 기저에는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측은지심. 사기꾼들에 대한 분노가 있지 않았는가.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데 있어"라고 격려해 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에게도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p.14


이렇듯 이 사회의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자조차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선언하면서도 결국 이 사회를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깊은 공감과 진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이니까'

이 말로 얼마나 많은 개인주의자들이 타인의 고통에 흐린 눈 하고 냉소적으로 지내왔을까.

사실 나 또한 그래왔을지도.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아주고 배려해 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p.279.


맞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지켜주어야 한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술에 취한 젊은 여성을 데리고 가는 80대 노인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호텔 직원이 그때 신고를 해주었더라면.

길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지 못한 채 우회전하는 버스 기사님에게 누군가 사람이 있다고 손짓을 해주었더라면.

우울증을 알고 있던 젊은이가 뛰어내리기 전 누군가 넌 소중한 사람이다 말해줬다면.


그리고 이미 봐왔다.

한 겨울 속옷차림으로 걸어 다니던 노인을 외면하지 않고 옷을 벗어주고 보호해 준 택배회사 사장님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쓰러진 중년남성에게 지체 없이 cpr을 실시한 행인이 있었기 때문에.

'실종아동을 찾습니다'문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상착의를 기억했던 시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킬 힘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결국, 저자의 뒤에 숨어 개인주의를 합리화를 해보려고 했던 나의 불순한 의도와는 다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이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다소 불편한 진실에 대한 깨달음이 나를 강하게 꾸짖었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칭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개인이 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 결국 타인에 대한 공감과 사랑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을.

나부터 그렇게 살아가야, 내가 한 개인의 세상을 지켜주어야, 나의 개인주의 또한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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