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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오리고기 같은 것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어느 가을 주말, 친구네 가족과 춘천으로 주말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간 펜션은 바로 옆 미술관이 배경화면이 되고, 계곡 물소리가 배경음악인 멋진 곳이었다.
아이들과 행복한 1박을 보내고, 다음날 점심 먹을 곳을 검색했다. 숙소 선정에 성공한 나는, 의기양양하게 네이버 검색을 했다.

춘천시 OO면 맛집..

음.. 검색 키워드가 아주 호갱 되기 쉬워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매의 눈으로 나를 현혹시킬 광고들을 걸러낼 터이니.
초록 검색창 화면 속에 어느 중국집이 눈에 들어왔다. 리뷰들이 구구절절 아주 평이 좋았다. 광고인가 하는 의심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이 평화로운 읍, 면이란 행정구역에 음침한 자본의 손길이 닿아있을 리 없니.

중국집까진 15km로 거리가 꽤 멀었다.
하지만 나와 친구의 가족들이 탕수육을 한입 베어 물고 내게 엄지 척을 보이는 모습을 상상하며 호기롭게 시동을 걸었다. 내차가 앞장서고, 친구차가 뒤를 따라왔다.
20여분을 달려 네비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싸했다... 나의 상상대로면 중국집의 문 앞에 파란색 리본 스티커 몇 개가 무심하게 붙어있고, 기다리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짜장면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도로 옆에 덩그러니 놓인 폐가 같은 중국집이 있었고, 그 앞에는 먼지 쌓인 바람개비 2개가 힘없이 돌고 있었다...

리더의 선택이 이리도 중요한 것이었다. 굶주린 배를 잡고 몇 킬로를 달려왔는데.. 아내와 친구 부부, 그리고 아이들에게 민망해졌다. 되새겨 보니 그 리뷰는 광고가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여긴 1일 1 탕수육을 해야 하는 곳이에요!" "탕수육 5대 맛집이에요!"

차마 여기서 아이들과 엄마들을 데리고 먹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국집 문 앞에 임시휴업 안내가 쓰여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 아.. 미안하다. 광고 리뷰에 당했네. 그럼 어디 가지?"

" 여기까지 온 김에 유명한 춘천닭갈비나 먹으러 가자~"

친구와 나는 의기투합하여 다시 차 시동을 걸었다. 시간은 이미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닭갈비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였고, 점심을 못 먹은 우리의 배는 슬슬 조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춘천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참고 달려보기로 했다.

목적지에 절반 정도 왔을 때쯤 우리는 춘천대교를 건너야 했다. 그런데 교통 통제를 하고 있었다. 가을이어서 들뜬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마라토너들의 축제... 춘천마라톤...

머리를 쥐어뜯는 나에게 교통 통제를 하는 아저씨가 우회길을 알려주셨다.

" 아~ OO닭갈비요? 지금 춘천대교는 못 건너고, 춘천댐까지 쭉~가셔서 거기서 강을 건너고 그다음 로터리에서 우회전하고,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해서 고속화도로 타고, 그다음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나에게 그의 친절한 안내는 온전히 입력이 되지 않았다. 좀비처럼 그저 춘천댐을 향해 운전을 할 뿐이었다. 백미러에 보이는 친구의 차에서도 뭔가 좀비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우리들의 차는 춘천댐을 향해 북쪽으로 향했다. 시간은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북쪽으로 향할수록 문명의 손길은 점점 없어지고, 산과 강만 보이기 시작했다. 길 옆에 돌로 만든 낯선 안내판이 하나 보였다.

' 여기부터 38선입니다 '

냉전시대를 관통하며 태어나서, 반공 포스터를 그렸고 교련 과목을 들은 80년대생 우리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우리의 굶주림과 북쪽을 향한 방황은 이제 생존의 문제였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친구차도 멈췄다.
뒷자리에 잠든 아이들의 눈에서 다크서클과 기아가 느껴졌다.

친구가 말했다.

" 안 되겠다. 이 근처 제일 가까운데 아이들 먹을 수 있는 음식점에서 그냥 먹자.. 저기 오리고깃집 있네..."

아주 목가적인, 건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 단 하나의 음식점이 있었다.
비포장 골목을 들어가 주차를 하고 다 같이 음식점에 다가갔다. 간판 같은 건 없었다. 나무와 풀로 둘러싸여 건물의 형태도 알아볼 수 없었다. 안에서 나오는 연기만이 음식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우린 살기 위해 먹어야 했다.

음식점에 들어서니 비좁은 그곳이 북적북적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인 거 같았다. 우리는 오리고기 한 마리를 시켰고, 주인아주머니가 숯불과 고기를 가져오셨다. 적당히 고기를 구운 후 아이들에게 줘도 될 만큼 구워졌는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 보았다.

오 마이갓..

오리의 대퇴사두근의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방사되어 키워진 오리의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
유기농 채소만 먹은 그의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암튼 내가 먹어본 오리 중에 제일 맛있었다...!

6살 아들은 주는 데로 오리고기를 다 받아먹었다. 오히려 성인 1인분 양 가까이 먹는 그를 제지해야 했다. 아내는 먹느라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위도 38도선의 오리고기 집에서 구원을 받았다.

우리가 계획한 중국집과 닭갈비집은, 리뷰 알바와 춘천마라톤으로 뜻대로 되지 않았었다. 그렇게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헤매던 우리는 난생처음 발디딘 곳에서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재즈아티스트 거쉰은 말했다.

"인생은 재즈와 같다.
즉흥적일 때가 최고의 연주이듯 삶도 그렇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애써 준비했던 것들이 다 틀어졌더라도,
별안간 닥친 불운에 좌절하게 되더라도.
삶에 닥친 불협음에 새로운 즉흥 음을 얹어 볼 거라 다짐했다.
그렇게 얹은 음들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나만의 화음일 테니까. 그것은 나에게 생각지 못한 선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배가 부른 후 한없이 관대해진 우리는 오리고깃집을 나왔다. 음식점을 지키는 목줄 없는 강아지가 우리를 배웅했다. 그곳의 모든 것은 그렇게 어딘가에 메여있지 않았었다. 강아지도, 주인장도, 오리도, 우리도.

집으로 향하기 위해 네비를 찍었다. 일요일 오후 5시, 온통 시뻘건 선들이 서울로 향하는 길을 채우고 있었다. 그 속의 빨간 점 하나하나가 각자의 우연들을 담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인생의 즉흥연주를 시작하기 위해 차의 시동을 걸었다.

오리고기를 한점 먹었을 때의 순간이 기억났다. 눈이 커지는 그 순간엔 분명 내 머릿속 배경음악이 있었다.
그 음악은 분명 재즈 음악이었음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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