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길을 나서며 차 시동을 건다.
오늘도 어김없이 삶의 쳇바퀴를 시작하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다. 이제 구세대의 문화가 된 그 라디오에서 디제이가 신곡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 매달 신곡을 내는 아티스트 윤종신의 이번 달 신곡
'외로울 준비' 같이 들어보시죠~! "
윤종신이라..
나의 세대 한국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한 아티스트이다. 그는 90년대 해성같이 데뷔했고, 누구나 아는 히트곡 가수이자 작곡자이다. 한때 예능 프로 '라디오스타'에서 개그맨보다 더 웃긴 진행을 했던 방송인이기도 하다.
그는 2010년에 매달 한곡씩 신곡을 발표하는 '월간 윤종신'이란 음악실험을 시작했다. 처음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2017년에 갑자기 '좋니'라는 곡이 역주행을 하며 히트를 쳤다. 그는 계속 작업을 이어나갔지만, 그 이후 대중이 많이 알만한 히트곡은 더는 없었다.
오늘 오랜만에 라디오에서 그의 신곡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나도 윤종신 노래의 감성을 좋아해서 몇 곡을 즐겨찾기에 담아 놨었다. 하지만 유튜브에 범람하는 음악과 변화하는 시대 속에 그에 대한 관심은 꺼졌었다.
내가 그에게 관심이 없어진 것처럼, 대중에게 그는 더 이상 인기 있는 대세 가수가 아니었다. 차트나 뉴스에 그의 소식은 더 이상 없었다. 방송에서도 그를 드물게만 볼 수 있었다.
오늘 오랜만에 라디오에서 나온 그의 음악이 참 좋았다.
단어 하나하나를 눌러가며 전달하는 그의 목소리.
그리고 곡의 말미에 나오는 특유의 반음 내린 변주는 이번에도 나의 감정을 건드렸다. 그래서 그의 노래들을 오랜만에 찾아봤다.
그동안 그가 낸 싱글 앨범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2010년에 '월간 윤종신'을 시작한 이후로 한 달도 빠지지 않고, 매달 신곡을 내고 있었다. 그 작업을 시작한 지 올해 15년째였다.
계속 스크롤을 해도 끊이지 않는 그의 앨범들을 보며, 왜인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수많은 곡들은 남들이 관심 갖지 않아도 묵묵히 쌓아 올린 그의 신념이라 느껴져서인 것 같았다.
그에게 '월간 윤종신'은 어떤 의미였을까 상상해 보았다.
그의 유명세와 저작권을 생각하면, 그것의 의미는 경제적 가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프로젝트는 자신과의 약속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15년의 기간 동안 매달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아주 큰 의무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계속한다는 건, 그저 좋아서라기보단 의무감에서 나온 것임이 분명했다. 좋다는 감정 조차 한없이 변덕스러운 게 사람의 본성이기에.
그렇다면 그 의무감은 계약 혹은 약속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도 그가 만드는 노래였기에... 그것은 계약보단 자신과의 약속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더 대단해 보였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이 느껴졌다. 주목받던, 그렇지 않던 그저 묵묵하게 걸어온 그 길이 멋있었다. 주목받는 것의 달콤함을 알고 있을 그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했다.
그렇게 내가 감동을 느끼는 것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돈을 빼고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이 시대에,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묵묵히 발간하는 월간지는 윤종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월간 부모, 월간 주부, 월간 학생, 월간 직장인, 월간 공무원, 월간 예술인..
삶에 소신을 가지고, 경제적 가치에만 매몰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하루하루 삶의 쳇바퀴를 사랑하려 애쓰는 모든 사람들. 그들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자신만의 월간지를 매달 펴내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내 우상은 단연 서태지였다.
천재적인 음악성과 신비로움으로 대중문화를 바꿔 놓은 그를 시대의 영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화려한 영웅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다.
40대가 된 나에게 우상은 서태지보단 윤종신이다.
신비에 둘러 쌓인 영웅보단, 나도 너희같이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구시대의 가수가 좋아졌다.
젊었을 때 성공하여 은퇴 후 유유자적하는 삶은 나에게 너무나 현실성이 없었다. 어떻게든 정년을 연장하며 삶의 쳇바퀴를 기꺼이 감내하는 삶이 좀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것은 멋있게 나이 든 중년의 주름살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월간 윤종신'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궁금해지고 그를 기대하게 됐다.
그렇게 윤종신 다시 듣기를 하며 요즘 꽂힌 곡이 있다.
'동네 한 바퀴'
갈수록 짧아지는 가을이 소중해지는 일요일 오후, 이어폰을 꽂고 그 노래를 들으며,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그리고 그저 평범하게 의지박약인 나에게 영감을 준 윤종신을 보며 다짐했다.
월간 윤종신이 계속 나올 그때까지, 나는 꼭 글을 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