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난 후 약 20년이 흘렀다.
그 숭고한 선서에 담긴 사회의 기대와 달리, 지금의 난 평범한 자영업자와 다름없다. 매출을 계산하고, 이해타산을 따지며 하루를 마감한다.
자본주의에 잘 적응된 검은빛 마음은 매일 아침 흰가운을 걸치며 적당한 회색빛으로 중화된다. 그렇게 하루의 진료를 시작한다.
환자가 없을 때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오늘은 비가 와서 환자가 별로 없는 거겠지..'
스스로 위안하지만 진료실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지면 스멀스멀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그 불안감은 늘지 않는 하루의 매출을 자꾸 클릭하여 들여다보게 한다.
친구 누구는 잘 나간다던데... 어느 병원 내과는 잘 돼서 확장을 한다던데..
내가 잘 안 풀릴 때, 남 잘되는 소리는 어깨너머에서도 그렇게도 선명하게 귀에 꽂힌다. 남과의 비교에 취약한 습자지 같은 자존감은 여지없이 흔들린다.
환자가 많을 때도 나는 흔들린다.
감기가 유행하는 철이나 건강검진을 많이 하는 연말,
9시 땡 진료 시작하고 정신없이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있다. 짧아진 점심시간에 예민해진 나의 신경은 오후 5시쯤 되면 한계에 도달한다.
아직 정신수련이 부족한 탓인가, 배가 부른 탓인가...
아파서 나를 찾은 환자들의 호소가 슬슬 푸념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그런 환자의 호소에 지독히 날 선 답변이 입에 맴돈다.
' 그 정도는 나도 아파요.. '
' 연세가 드셔서 그런 걸 어쩌겠어요...'
' 약을 하루밖에 안 먹었는데 벌써 낫겠어요..?'
하지만 속으로 삼키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청진기를 귀에 꽂는다.
아.. 서비스직이란 이리도 힘든 것이구나.
동네병원 의사란 몸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아는 서비스직과 다름없다. 특히나 환자의 얘기를 많이 들어야 하는 내과라면 완벽한 서비스직이라 할 수 있다.
아직 나는 동네병원의 대가가 되려면 갈길이 멀다.
나의 피로도에 따라 환자에 대한 아량이 들쭉날쭉하는 걸 보면.
거기다가 환자가 없어도 괴롭고, 환자가 많아도 괴로운 걸 보면 대가는커녕, 중인도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나는 평범한 소상공인이었다.
오늘은 월요일, 오후 5시경.
환자가 많아 점점 굳어지는 표정을 마스크로 가린 채 진료를 보던 중이었다.
나에게 종종 오던 7살 아이와 엄마가 진료를 보러 들어왔다.
엄마는 누구든 알아차릴 조선족 억양의 말투를 썼다. 아이는 뇌전증이란 지병을 갖고 있어 항경련 약을 매일 먹고 있었다. 지병으로 면역력이 약해 감기에 자주 걸리던 아이는 환절기에 나를 종종 찾았었다. 오늘도 감기 때문에 진료를 보러 왔다.
" OO 이는 오늘 감기 어떤 증상이 있어서 왔어요?"
"....."
아이도, 엄마도 한참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는 내 질문을 외면하며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처음엔 엄마와 아들이 우는 줄 알았다. 근데 자세히 보니 둘은 웃느라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웃음이 빵 터진 것이었다.!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 어떤 상황 때문에 빵 터진 웃음을 진료실에서도 참지 못했던 것이다.
" 콧물도 나고... ㅋㅋ.. 코도 막히고... ㅋㅋ.. 휴...ㅋㅋ"
웃음을 참으며 아이 엄마가 말했다.
쉴 틈 없이 이어진 진료에 피로가 쌓여, 나는 역시나 속이 좁아진 상태였다. 대기 환자도 있던 터라 잠깐 마음이 급해졌었다. 하지만 왜인지 나는 아이와 엄마의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빤히 바라보게 됐다.
그들에게 진료를 재촉하지 않았다. 아니, 둘이 너무 행복해 보여 재촉할 수 없었다.
오늘 하루 과로로 점철된 진료의 일시정지였다.
말도 못 할 정도로 웃던 아이와 엄마는 잠시 후 숨을 가다듬고 나의 청진기를 받아들였다.
아이는 중간중간 삐집고 나오던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리고 진료가 끝난 후 대기실로 나가 엄마와 한바탕 웃음 배출을 하고는 병원을 나갔다.
아이에게 감기약을 처방해 주고 잠시 아이와 엄마를 떠올렸다.
그 순간 둘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녀의 바꿀 수 없는 말투가 가져올 남들의 편견,
아들의 지병에 대한 걱정이 둘을 옭아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런 걱정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아무리 참아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은 그 감정의 차고 넘침을 나타냈기에.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저렇게 빵 터지게 웃어본 기억이 언제인가.
하루 종일 작은 진료실에 앉아 타인의 고통에 공감의 제스처를 보내고 그것에 개입한다. 힘들어질 때면 내가 그런 연기를 하고 있음을 느낄 때도 있다.
그리고 나는 하루하루 매출이란 숫자에 얽매인다.
그 숫자가 적은 날엔 불안감에,
그 숫자가 많은 날엔 딱 그만큼 과로한 나의 심신에 흔들린다.
의사라면 이 정도는 벌어야지.
개원했으면 이 정도는 벌어야지.
그런 사회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나는 불행해진다. 그 기준이란 것은 사실 남과의 비교에서 만들어낸 내 욕심의 기준이다. 이미 충분히 가졌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가진 것만큼 늘어난 소유의 배포 때문에 욕심은 잘 희석되지 않는다.
아이와 엄마의 빵 터진 웃음을 보며 생각했다.
행복은 참고 고생한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계산기를 두드려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열심히 달리는 나에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잡히는 것 같다가도 이내 희미해지는 그 행복이란 감정.
그것은 찰나의 감정이기에 애초에 온전히 가질 수는 없는 것일지 모른다.
아이와 엄마에게 차올랐던 웃음이 다 배출되고 난 후엔, 녹록지 않은 현실이 그대로 남아 빵 터진 웃음을 공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넘칠 만큼 웃을 수 있는 걸 보면,
행복은 꼭 어렵게 구하지 않아도 잠깐씩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을 위해 마음을 너무 꽉 채우지 않고 한구석을 비워 논다면..
며칠 후 점심시간에 병원 앞 시장을 지나치던 중, 아이와 엄마가 지나가는 걸 봤다.
엄마는 아이를 앞에 태운채 오토바이를 몰고 가고 있었다. 쌩 하니 지나가는 둘의 모습은 말 그대로 찰나였다.
오토바이 핸들을 잡은 엄마의 품 안에 묻혀있는 아이,
그 속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웃는 아이의 미소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
다시 본 아이와 엄마의 행복한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