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아직 엘리베이터가 바쁘지 않은 이른 아침,
혼자 깨어나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오래돼서 편하다 못해, 이제 바꾸기도 두려운 내 차를 타고 시동을 걸었다.
젊을 때 많이 타던 지하철을 탈 일이 요즘엔 거의 없다. 간혹 타는 지하철 인파 속에선 '나도 이 사회 속 사람이구나' 하는 낯선 안도감이 느껴지곤 했다.
너무 고립되게 사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나의 병원에 도착했다. 나만의 공간, 진료실에 들어왔다. 접수 데스크에선 간호사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서로 사이가 그럭저럭 좋다는 얘기겠지.. 한동안 직원 채용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내가 물 한잔 뜨러 진료실에서 나오면 갑자기 직원들의 수다는 음소거가 됐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참나.. 뭐.. 나 역시 댁들이 그리 편하진 않다구...

9시 땡, 오전 진료를 시작했다.
여러 아픈 이들이 내 방을 들어왔다 나갔다.
그리고 많은 이들과 대화를 했다.

사실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환자들은 나에게 몸 구석구석 아픈 증상을 쏟아냈다. 나는 곰곰이 듣고서 그에 맞는 처방을 냈다.

주고받는 대화라기 보단 일방통행의 대화였다. 대기업으로 치면 고객 고충처리반의 역할이라고나 할까?

환자와의 대화에서 티키타카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의사도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이니까. 지불한 가치만큼 돈 값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진료실은 많은 사람이 거쳐갔음에도, 결국 나 혼자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의사 혼자 있는 작은 동네병원에서 나의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었다.

오전 진료가 끝나고 혼자 밥을 먹으러 나왔다.
오늘은 왠지 입맛도 별로였다. 비빔밥이나 먹으러 병원 앞 분식집에 들어왔다. 혼자 밥 먹는 게 일상이라 어색하진 않았다. 오늘따라 병원 옆, 동사무소 직원들이 옆테이블에서 수다 떨며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뭐..같이 밥 먹는 것도 좋겠지만, 억지로 웃으며 불편하게 먹는 직원들도 있겠지..'
그렇게 혼자 먹는 나를 위로했다.

오늘 오후는 일주일에 한 번 일찍 퇴근하는 날이었다.
사람은 참 간사했다. 오후 휴진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그렇게 좋았었는데.
이제 오후 휴진은 별다른 감흥 없는 일상이었다.
늘 하던 데로 악기 연습을 하고, 혼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조깅을 했다.
평소엔 기분 전환도 되고, 뿌듯했던 취미가 오늘따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왠지 계속 혼자 있는 게 싫어져 집에 빨리 들어갔다. 아내와 아들이 집에 있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외롭다는 것, 나는 그걸 인정해야 했다.
처음 시작할 땐 몰랐다.
동네병원 의사가 된다는 것, 그리고 자영업자가 된다는 것. 그건 자발적 고립을 택하는 길이었다.
사회생활이라 부르는 인간관계는 거의 없었다.
연락하는 친구들도 줄어들었다.
새롭게 배우는 사회 경험은 전무해졌다.
듣던 음악만 또 듣는 나의 플레이스트같이, 내 마음도 편협해지고 고집만 늘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개원을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혼자 있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위해 연락을 자주 했다.
" 얌마~ 사람이 혼자 있는 걸 즐길 수 있어야 성숙하는 거야~"
내가 그에게 말했었다. 그가 외로워서 혼자 있는 걸 힘들어한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외로운 건 나였다.
요 몇 년,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진짜 나를 찾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여가 시간에도 혼자 하는 걸 찾았다. 여럿이 하는 운동보단, 혼자 하는 취미를 즐겼었다.
그 시간이 오래되자 점점 혼자 있기가 싫어졌다. 아니, 원래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뭔가 몰두하는 취미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임을 즐긴다고 하는 것, 그것은 사실 다른 방법의 고독의 표현이었다.
누군가와 같이 하려는 건, 상대의 거절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상대와의 관계가 피상적이라면, 그 이후의 공허함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혼자 있는 걸 추구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에게 다니는 80대 중반 할머니가 가슴이 답답하다며 진료를 보러 왔었다.

"의사선생~ 요즘 가슴이 답답하고 혼자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나고 그라네~"

내가 말했다.
"어르신, 최근에 한 건강검진결과에선 심장도 건강하신 편이고, 혈액검사 결과도 좋았는데.. 무슨 스트레스받는 일 있으세요~?"

"... 사실 우리 할아버지랑 사별한 지 몇 년 되고 나서, 내가 요새 춤을 배우러 다녀요.. 거기서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데~ 요새 그 인간이 딴 여자랑 춤을 추는걸 우연히 본거야~ 내가 몇 년간 매달 용돈도 주고, 그렇게 잘해줬는데~ 그 생각만 하면 그렇게 눈물이 나네.. 어휴 의사 선생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구먼~"

어휴, 할머니.. 그 연세에 연애라니.. 대단도 하시지..
노인이 돼 보지 않은 자라면 누구나 들었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외로움은 그렇게 끈질긴 것이었다. 나이가 든다고 외로움이 익숙해지는 건 아니었다.
70세에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공자의 고상한 말은 80대 할머니의 외로운 현실 앞에선 그저 헛소리일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것이었다.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적은 노인이건,
처음 실연을 경험하고 똥폼 잡는 청춘이건,

혼자인 순간을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사람이건,
혼자인 걸 즐긴다고 자기 위안을 하는 사람이건,
뻔한 소리만 해대는 MBTI 유형의 E 따위 건, I 따위 건.

각자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때론 처절하게 외로움과 공존하며 살아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앞으론 혼자가 편하다고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임을 즐기는 게 성숙해지는 거라 생각하지도 않기로 했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외로움은 갑자기 찾아왔다가 어느새 희미해지는, 하나의 계절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외로운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어린아이에서 80세 노인까지, 아프다는 이의 고충을 들으며 자영업자의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일주일 이상 한파주위보가 내린 추운 겨울이었다.
짧아진 해 때문인지, 외로움의 계절도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이 계절도 지나가리라 생각하면서 집 앞 공원을 뛰러 나갔다. 내 귀에 낀 이어폰에선 항상 똑같은 90년대 음악이 고집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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