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의 배경음악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매일 아침 진료를 시작하기 전,

내 진료실 안 스피커에 음악을 튼다.

하루의 루틴으로 음악을 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우리 병원 근처에 계신 연로하신 원장님이 진료를 볼 때, 본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항상 틀어 놓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개원한 지 30년이 넘은 그 원장님은 아직도 병원에 출근하는 게 너무 좋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그분의 개원 생활의 반도 안 되는 미천한 기간임에도, 나에게 권태와 행복은 찾아오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래서 그분의 행복 비결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보기 위해, 진료실 안에 내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틀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진료실에서 음악이 흐르면 집중이 안될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보컬 없이 연주만으로 된 느린 템포의 음악은 진료실 안에 아주 잘 녹아들었다.
음악은 존재를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질병의 공간을 부드럽게 중화시켜 줬다.


특히 재즈의 느린 템포는 기다림에 지친 환자의 화를 누그러 뜨렸고, 나의 조급한 마음의 속도를 느리게 해 줬다. 그렇게 느림이 준 안정은 역설적으로, 내가 무언가에 쫓기듯 빠른 박동의 심장으로 살아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상이 힘들고 권태로울 때, 언제쯤 일을 그만두고 편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했다.
' 일 안 하고 편하게 살 얼마나 좋을까...?'

근면성실이 미덕라고 대체 누가 나를 세뇌시킨 거야...

의사는 아직도 주 6일을 근무하는 몇 안 되는 직업이다.
아픈 사람이 요일 봐가면서 아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들의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개원 한지 몇 년이 흘렀고, 주 6일을 돌리는 진료의 쳇바퀴에 점점 힘이 부쳤다.

그래서 평일 오후 하루를 쉬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평일 오후 처음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한낮의 해를 보는 광합성만으로 그저 좋았다.
처음엔 이 짧은 반나절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려고 했다. 하지만 계획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주의 휴식도 오래되자 지루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평일 오후 한적함의 특권을 누리며, 뭔가 새로운 걸 해보는 시도를 해보았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그 반나절 동안 뭘 할지 고민하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익숙지 않은 길을 어디론가 찾아가는 건, 또 다른 에너지를 쏟는 일이었다.
결국 나의 반나절 오프는 다시 내가 익숙한 일들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같은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는 일. 같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는 일. 같은 벤치에서 글을 쓰는 일.
그렇게 익숙한 루틴을 내가 다시 만들고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진료실을 나온 나는,

또다시 무언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무늬의 쳇바퀴를 찾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나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쫓는 여유로운 은퇴 생활이 온다면 난 어떻게 그것을 맞이하게 될까.
젊을 때 사서한 고생의 대가로 여긴 은퇴가 공허한 시간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일을 안 하며 사는 꿈을 꾸기보단, 일을 어떻게 하며 살까를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얼마 전 작고한 고 이순재 배우의 기사를 보았다.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할 수 없이 활동을 중단하기 전인 90세까지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 자신의 일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에게 연기란 무엇이었을까.
그의 수십 년간의 연기 인생에 권태란 없었을까.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는 게 가끔 시지프스의 돌과 같이 느껴지진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세월이 그를 무대에서 내려오게 하기 전까지 연기를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연기는 그에게 어떤 것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인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무대라는 쳇바퀴를 돌려야만 하는 운명이라 느끼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쳇바퀴를 사랑하며 기꺼이 해나가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70년의 연기 인생을 견딜 수 없었을 거라 생각되기에..
그래서 그 시간들을 견디며 백발이 된 그의 연기가 숭고하게 느껴졌다.

그의 인생을 보며 생각했다.
일의 대가로 얻은 여가는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인생의 목표인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라기 보단, 그저 삶에 대한 태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진료실의 음악은 내 삶의 쳇바퀴를 대하는 태도이자, 그것을 사랑해 보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이순재 배우의 유언이 돼버린 마지막 수상소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신세라니.. 그에게 시청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배우의 존재 이유를 갖게 해 준 사람들이었다.

햇살이 유난히 좋아 보이는 아침,

오늘도 나는 진료실에 들어와 재즈 음악을 선곡했다.

생각해 보니 그 음악은 나 혼자가 아닌, 내 진료실을 찾는 이들과 같이 듣는 음악이었다.

내과 의사로서의 나는 그들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스피커의 재생 버튼을 누르며 하루의 진료를 다시 시작했다.

오늘도 나를 찾은 이들에게 신세를 지기 위해서.
내 인생의 쳇바퀴를 사랑하기 위해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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