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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란아이 Sep 14. 2023

다시 부엌에서 책을 펼치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나를 작은 부엌에서 다시 만나다. 

오후 3시, 종로의 한적한 도로에서 급하게 공중전화박스를 찾았다. 

담장 너머 축 내려뜨린 버드나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장 누구라도 탓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주섬주섬 크로스백 바닥에서 10원짜리 동전 몇 개를 찾아냈다. 전화를 걸어야 한다. 전화를...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었다. 

더 처량해 보이고 싶어서 비를 흠뻑 맞았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영화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철저히 혼자였다.      


스물 하나, 휴학을 하고 돈이 필요했다. 

급하게 구인광고를 보고 작은 무역회사에 입사했다. 

신용장을 검토하고 달러는 파는 일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흥미로웠다.       


스물 하나, 그 나이의 눈에만 볼 수 있는 착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잘해주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 보였다. 

나를 뽑은 매니저님도 나를 보고 늘 웃어주는 부장님도 좋은 사람이었다.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했다. 

온갖 잡일을 맡아서 했지만 힘든지 몰랐다.     

통장에 찍히는 급여라는 숫자에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하지만 신용장을 검토하고 달러를 파는 일 외에 온갖 잡일로 치부되는 착한 일은 어떤 형태도 없었다.

사장님 눈에 그저 나는 커피 타는 휴학생일 뿐이었다.     


팀장님이 장기 휴가를 가시고 한 달 이상 자리를 비웠다.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 실력을 가지고 팀장님이 전에 쓰시던 무역 서류들을 검토하며 그 자리를 메웠다. 

무역일이 흥미로웠고 잘 맞았다.      


그리고 두어 달 뒤, 사장님은 나에게 말했다.

"연우 씨, 무역에 기본이 아...... (침묵) 안 되어 있어서 같이 일하지 못할 것 같네요."

"사람 뽑을 때까지는 내가 연우 씨 대신해서 메일 보낼 테니 들어가세요."

"사장님, 제 본업은 신용장 업무랑 달러를 파는 일인데요."     


그만두라는 말을 너무 우아하게 했다. 내 말은 들어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들어줄 생각도 없었다. 

무역 영어에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말에 자책하듯 회사를 빠져나왔다. 

인생을 통째로 잘 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은 목숨과도 같았던 스물 하나. 나는 자존심도 영어도 건지지 못했다.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부터 찾아내는 비관론자가 되어버렸다.     


머뭇거리는 사이 기회는 나에게서 멀어져 갔고, 잠시 눈을 감고 일어났더니 스물한 살이었던 나는 40대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가 두려웠던 건 자존심이 상하는 잠깐의 시간이었는데 그 뒤에 왔던 수많은 기회들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건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다. 스스로 현실을 합리화하고 나서기 않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내가 놓친 건 기회와 타이밍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결혼을 함과 동시에 나는 집에서 노는 엄마가 되었다. 

하루 종일 부엌에 서서 식구들 끼니와 간식을 챙기고 돌아서면 또 부엌에 와 있었다. 

울고 보채는 아이들을 달래고 티도 나지 않는 집안일의 연속은 책 한 권도 읽을 아니 들 힘조차 없이 지치게 만들었다. 나를 위한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나를 잊은 채 살았다. 하지만 이것도 핑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 부끄럽고 상처받을 것만 같아 거짓말이라도 해야 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표면적으로 보면 너무나도 쉽고 여유 있게 생각할 수 있다. 

주변에서도 집에서 애만 보면 되는데 뭐가 힘드냐고 했다. 

참고 견디는 건 오랜 습관이라 다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세 아이의 육아를 한다는 것은 지독한 상사의 그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노는 엄마’가 되기 위해 선택한 일이 내 시간을 멈추어 버렸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그렇게 선택한 이 길이 15년이라는 긴 터널에 갇히게 할 줄은 말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세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었다. 

잠이 많은 내게도 잠이 중요하지 않았고 다가와 방긋 웃는 아이들이 마냥 예뻤다. 

내 시간을 통째로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아이가 학교를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많은 엄마들이 회사를 그만두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은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게 아니라 엄마가 학교를 다닌다. 내 경우에는 그랬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며 자유롭게 살아갈 줄 알았던 야무진 꿈들이 현실 속에는 없었다. 

언젠가부터 노는 엄마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시간은 미치게 바쁘게 흘러갔고 가는 시간을 쫓아갈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조차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아이들 셋을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녹녹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아이 셋을 낳았다고 하면 비웃듯 애국자라고 했다. 

내가 애국을 하기 위해 아이 셋을 낳은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나는 멍청한 애국자가 되어 있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꼭 죄를 짓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묵묵히 육아를 하며 지내던 중 이웃에 사는 선생님으로부터 논술 자격증을 따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책을 많이 읽고, 안 읽고의 문제가 아닌 겁이 덜컥 났던 나는 내가 무슨 논술 교사냐고 거절을 했지만 그다음 날 1년간 선생님이 공부했던 자료와 워크북등이 우리 집에 배달되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귀찮다는 듯 신발장에 뜯지도 않은 택배 박스를 내버려 둔 채 그 위에 신문을 켜켜이 쌓아가던 어느 날 갑자기 그 박스는 분리수거가 되어 있었다.      


그것을 뜯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라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수고스러움에 대한 미안함이 아프게 밀려왔다. 나는 분리수거함을 뒤져 몇 안 남은 원고지와 워크북을 주워왔다. 하지만 또 아무런 준비 없이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갔다. 60강을 듣는 동안 자연스럽게 실기시험은 공부가 됐지만 필기는 또 다른 방향의 공부였기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실기는 붙었지만 필기는 당연히 떨어졌다. 찍기에도 운이 따른다는데 나는 그런 운조차 없구나 라며 지난 시간들을 이유 없이 원망했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다시 일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서 우두커니 아이 셋의 육아를 하는 일이 마냥 즐겁지만도 않았다. 

스스로에게 지치고 지칠 무렵 다시 나에게 찾아온 고된 생각들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누구인가? 


이제는 육아라고 하기에도 너무 커버린 아이들을 보며 나는 늦은 나이에 나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두고 뭔가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무서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 아이들을 방패 삼아 숨어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더 가치 있고 값진 일이라 하면서 나를 매 순간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가족들에 대한 나의 원망과 짜증은 늘어갔고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은 더 이상 빠르게 뛰 여유조차 없이 급하게 추락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통로를 거쳐 지하에 다 달았다. 


나이만 40 대지 나의 사회적 나이는 스물 하나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터널에서 나가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나갈 생각이 없었다. 

이게 내가 15년간 아프도록 원하면서도 세상 밖으로 내딛지 못한 이유다. 


경제적인 문제와 아이들이 나의 걸림돌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햇빛 따사로운 내 길로 지하에서 몸을 일으켜 나갈 수 있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내가 나를 가두었고 내가 나의 발을 걸어 넘어 뜨렸으며 내 혼돈의 마음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렇게 고된 시간이 지속되었고 나는 이제 지하에서 막 1층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나는 논술 교사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세상으로 나오고 싶다면 사람들 틈에 서라고 말하고 싶다. 그 틈에 끼여 있다 보면 나만의 자리가 생긴다. 그 작은 틈이 기대와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잘난 사람들 틈에서 더 잘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유명한 작가가 될 필요가 없다. 

더 훌륭한 엄마가 될 필요가 없다. 

여기서 더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지금 그대로의 나를 보이면 된다.      


완벽한 모습으로 나오기 위해서 기다렸다면 일단 나오고 만들면 된다. 

준비하는 기간은 내가 더 배울 시간을 갉아먹을 뿐이다. 

나의 흩어져 있는 모든 경험은 적은 경험일지 모르지만 하나가 되는 순간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리더가 되고 브랜드가 될 것이다.      


오늘도 비가 온다. 

책 두어 권을 들고 카페를 나가는데 이 음악이 흘러 퍼진다. 

카페 앞에 한참을 서서 들었다. 

이 음악을 그때 들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면서 말이다.       


멈추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너의 길을 가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속 작은 이야기

지금 바로 내 마음속에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유재석과 이적이 부른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가사를 들어보면 너무 오래 숨어버린 나는 참으로 용기 없고 못난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거실 한쪽 구석에 모셔 두었던 턴테이블을 부엌 입구 프린터기 옆으로 옮겼다. 오랫동안 열지 않아 먼지가 한가득 쌓이긴 했지만 부엌은 클래식한 공간이 되었다. 로즈골드색 캔들 워머와 할로겐전구가 켜져 있고 그 안에 향기로운 연기를 뿜는 향초와 어디쯤 읽은 지 기억할 수 없는 두어 권의 책들이 엎드려 나를 기다리는 내가 주인인 공간으로 말이다.      


오늘도 나는 부엌에서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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