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정복하기 위한 환경설정
햇살이라고 할 수도 없이 눈이 부시게 쫓아오는 직사광선을 피해 밀가루 반죽 향과 오븐에서 갓 구워낸 첫 빵을 만나러 계단을 오른다. 열 칸쯤 올라갔을 때 뒤를 돌아본다. 따사로운 빛이 중앙 건물을 통해 나와 함께 돌아본다. 예쁘게 포장한 마당을 둘러싼 수많은 파라솔들이 한여름 바닷가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계단을 올라 입구를 보니 프랑스 어느 골목쯤에 붙어 있을 만한 작은 메뉴판과 빵이 나오는 시간을 알리는 작은 메모가 유리창 앞에 붙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길게 보이는 선반에 다양한 빵의 향연이 줄지어 있다. ‘오늘은 나를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 말이다.
오전 10시, 뭔가를 배불리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알겠어. 이제 먹는다고 하며 입으로 들어가는 빵들을 말리지 못한다.
나는 요즘 스몰 비즈니스를 한다. 한글 책으로 한 번 읽고, 영어 원서로 두 번 읽고, 외국인 선생님과 일대일 북토크를 하며 세 번 읽고, 미국인 선생님과 1회 북토크를 통해 말하기를 끌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시작은 우리의 영어공부를 위해서였다. 거기서 나는 한글책 북토크와 외국인 일대일 매칭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외국인 선생님들을 직접 섭외하여 인터뷰를 하는 작업을 한다.
기존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지만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하는 인터뷰는 꼼꼼함과 선생님들의 대한 파악이 생명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너무 무섭고 떨려 끝나고 나면 울기도 했다. 가지고 있는 영어 실력에 비해 많이 주어진 인터뷰와 메시지들이 어느 순간 나를 두렵고 힘들게 만들었다.
멈출 것인가? 계속 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울었다.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는 모른다.
내 실력이 들통이 나서 운 건지 다시 돌아올 북토크의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내 동공은 자리를 잡지 못해 눈 안에서 뱅글뱅글 맴돈다. 침묵이 30초쯤 나를 부른다. 침묵을 만나고 돌아온 대답은 친구로서의 충고였다.
“나 20년 영어공부 했어.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해서 매일 영어를 모국어처럼 접하고 살아.”
또 조심스럽게 말한다.
“너 이제 1년 했잖아.” 순간 흐르던 눈물이 뚝하고 멈춘다.
사실 알고 있다. 내가 영어를 시작한 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연습과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또 알고 있다. 내가 왜 외국인들 만나면 말할 수 없는지도 말이다. 매 순간 고민해 온 문제가 현실에서 터지고 말았다. 현실은 얄짤없다. 문제를 풀 겨를도 없이 전쟁터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과 내 실력과의 괴리감에서 오는 현타였다.
2022년 코로나가 한참일 때 영어를 원서로 다시 시작했다. 뭐라도 붙들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방통대 영어영문과로 무작정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느낀 건 20년 전과 비교해 별로 달라지지 않은 수업방식과 코로나로 인해 오픈 수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극적인 현실이었다. 방통대 수업은 처음이었는데 과와 상관없이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논술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국어 교육 쪽과 청소년 교육 쪽의 과목에도 기웃거렸다. 대부분 과제가 글쓰기였기에 기한만 맞추면 크게 힘들지 않게 학점을 받았다. 어느 순간 또 졸업을 위한 수업을 듣고 있다.
토요일 아침 8시,
미국인 선생님 젠과 북토크를 하는 날이다. 8시에 하는 줌토크지만 일주일 전부터 신경이 쓰인다. 참여를 할까? 말까? 를 수백 번쯤 생각한다. 분명 좋은 기회는 맞지만 일대일 수업보다 수백만 배는 더 떨린다. 호스트인 그녀에게 내가 준비한 질문 이외에는 하지 말라고 얘기해 둔다. 하지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에게 온다.
잘 들어야 한다. 잘 대답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긴장이 쌓이는 만큼 부담은 더 커진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어른이 되고 나서 하는 영어는 그 단어와 문장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들린다는 것이다. 한국어로 변환해서 영어로 뱉는 것은 천재도 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걸 내가 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어로 생각하기 바쁘다. 그것을 영어로 변환하는 그 어려운 일을 말하면서 하고 있다.
언어를 배우는 일은 로켓을 발사하는 일과 비슷한데 로켓이 궤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엄청난 에너지와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 번 궤도를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큰 힘을 주지 않아도 로켓이 움직인다. 궤도에 도달하기 전에 조금만 힘이 빠져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사고로 이어진다. 나의 영어도 마찬가지다. 궤도를 넘어가기 전까지는 중간에 쉼이 없어야 한다. 쉼이 없어야 하려면 올라가는 시간 동안에 에너지와 힘이 필요하다.
내가 두려운 것은 남들에게 내 영어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거였다. 그저 말하는 것이 두려운 줄 알았다. 말하기의 두려움에 대해 찾아보고 고민하다 보니 다양한 음소와 연음에 익숙하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했다. 같은 사운드나 단어도 정확하게 발음을 해주면 알아듣고 조금만 달라져도 못 알아듣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영어 공부는 이론적인 지식이 주가 된다. 이론적인 지식이 강화되다 보니 지식을 흡수하는 사용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한 지문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단어와 숙어의 뜻을 많이 알면 된다. 하지만 그것들을 온전히 언어로 알아듣는 일은 지식을 흡수하여 실제 사용하고 경험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봐야 누가 얘기해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쉬지 않고 가야 한다. 쉬지 않고 가려면 에너지와 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궤도를 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와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움직이면 얻을 수 있다. 움직이기만 한다면 1년 전의 나는 오늘의 나와 분명 다르다. 1년 전 나는 로켓만 발사하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다시 로켓을 발사하기 위해 원점에 돌아와 있다. 비싼 로켓도 있고 에너지와 힘도 있지만 끝까지 가져갈 의지가 없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환경설정은 세 가지다.
첫째, 독서 모임 ( 소속되기 )
코로나가 한참이었던 2022년 1월, 친구의 권유로 생전 처음 원서 읽는 독서 카페에 가입을 했다. 온라인으로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온라인으로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아이들 줌으로 수업하는 것도 못마땅하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책은 늘 혼자서 읽었고 읽은 책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오직 아이들과의 수업뿐이었다. 첫 줌 토크하던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줌 링크를 누르고 사람들을 마주하는 순간 느껴졌던 긴장감. 상기된 얼굴의 표정과 입술을 깨물던 기억까지 생생하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 모임을 통해 온라인 독서 모임의 신세계를 맛보았다. 함께 읽는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인사이트를 나누고 내가 찾아 헤매던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다. 특히 이기적인 생각에 갇혀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혼자 책을 읽으면 나의 생각이 정답이고 나의 생각을 쉽게 합리화한다.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함께 하게 되면 혼자 계획해서 하는 것보다 덜 지치며 고지 도착은 더 쉽다. 일단 독서 모임의 멤버가 되면 책임감이 따른다. 경쟁심이 생겨 느리더라도 끝까지 읽는 힘이 생긴다. 독서 모임은 독서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가장 쉬운 환경 설정이다. 독서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주저 말고 독서 모임을 검색해 나에게 맞는 독서 모임의 일원이 돼라.
둘째, 책을 읽을 시간과 공간 만들기, 독서 일기 쓰기
오전에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오면 잠이 쏟아진다. 그렇게 피곤한 것도 아닌데 집에만 들어가면 잠이 온다. 졸면서 주섬주섬 빨래를 개면서도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오후에 수업을 가야 하니 지금 자야 해라고 누군가 최면을 걸고 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쉽게 쓰니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책 읽을 시간은 없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면 끄덕거리며 맞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이런 나의 일상은 독서 모임을 갖게 되면서 바뀌게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 갈 준비를 할 때 나갈 준비를 한다. 학교 근처 일찍 여는 카페에 자리 잡기 위해서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카페에 도착하는 시간 오전 8시 40분 그 시간부터 오전 11시까지는 책을 읽고 독서 일기를 쓰는 시간이다. 집이 아니니 잘 수도 없고, 아침부터 디카페인 커피 향을 맡으니 나 스스로가 우아해 보인다. 만족스럽다. 오전에는 주로 한글로 된 책을 읽고 독서 일기를 쓰고 퇴근을 하고 나면 주방이 내 공간이 된다. 시간을 쪼개어 쓰게 만드는 환경 설정은 나를 스스로 눈부신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
셋째, 방통대 편입과 전화영어
강제성으로 따지자면 좀 과할 수도 있는 환경설정이다. 3학년 편입을 하고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온라인 수업과 줌수업 등으로 1년 반을 보냈다. 중간에 포기가 많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서 졸업까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반 학기. 작년 2월 무작정 등록한 이곳에서 내가 배운 것은 이론적 지식의 축적이다. 고등학교 이후 장기 기억장치에서조차 탈출해 버린 내 기본 실력을 다지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나의 영어 실력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독서로 원서 읽기를 한 것뿐이었는데 몸이 움직임과 동시에 뇌의 활성화도 함께 되고 있었다. 영어 회화 시간에 영국 교수님이 매 수업 시작 전 영어과 관련된 질문에 팁을 주셨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이었지만 이론적인 해석과 현실적인 가이드를 제시받음으로써 영어를 강제로 접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들리지 않아 울면서 마무리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나에게는 의지가 필요했다. 그 의지를 혼자 만들기는 어렵지만 함께 만들면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내가 아이들까지 동원해 온라인 모임에서 책을 읽으라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곳에는 에너지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용기와 의지도 공짜로 얻을 수 있다.
12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온다. 먹지도 못한 빵은 다 식어 눈물에 간을 맞추고 오렌지에이드만이 내 몸에 흡수되어 달달하게 나를 달래고 있다. 진행 중이라는 말은 시작 전이라는 말보다는 더 진취적이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준다. 하지만 언제 완료될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답답한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 포기한 빵 한 조각이 이내 마음에 걸리는 것처럼 어딘가에 걸려 있는 영어에 대한 답답함을 이제는 꺼내 보고 싶다.
We are all travel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 - About Time
( 우리는 매일의 삶을 시간과 함께 여행하고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훌륭한 여행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