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승화
반려동물을 무지개다리로 떠나보낸 경험이 없다면, 그 상실감과 허무함을 감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감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 마음을 털어놓는 건 사실 아무 의미가 없어요. 공감을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로의 말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상하게 만들기 일쑤니까요. 듣는 사람도 피로해질 테고요. 그래서 저는 그 감정을 스스로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저만의 몇 가지 방법들을 통해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토토가 떠오를 때마다 미루지 않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리움이 차오를 때,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로 글로 풀어냅니다. 글이 엉망일 때도 있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어지럽게 흐르기도 하지만, 이 기록들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입니다. 토토에게 전할 수 없는 편지이자, 내 마음의 고백을 담은 글이에요. 마치 비밀의 대나무숲에 속삭이듯, 내 그리움과 후회를 글로 풀어놓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 감정들이 천천히 정리되는 걸 느끼곤 해요.
두 번째 방법은 토토 굿즈를 모으는 것입니다. 티셔츠, 피규어, 쿠션, 아트돌, 마우스패드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토토 굿즈를 모으고 있어요. 마치 토토의 스토커가 된 것 같지만, 굿즈를 만들 때마다 토토와 연결된 느낌을 받아요. 굿즈에 들어갈 사진을 고를 때, 힘들었던 순간들 대신 토토가 생기 넘치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선택하게 되니까요. 그 순간들은 나에게 토토가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줍니다. 이별의 아픔은 컸지만, 그 시간을 빼면 토토는 내 삶에서 가장 확실하고 큰 행복이었어요. 15년 동안 행복했던 기억이 이렇게 많은데, 어쩌면 나는 마지막 3주간의 고통만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세 번째 방법은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입니다. 이 약은 내가 너무 깊은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나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모든 감정을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약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 약을 복용하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이에요. 마치 로봇이 된 듯, 외부 자극에도 별 반응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평소라면 크고 작은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는 내가, 그저 무덤덤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덜 느끼는 것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방법은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것입니다. 토토가 한참 아플 땐 녀석을 데리고 병원에 다니느라 일은 아예 신경도 못 썼어요. 하지만 이제 슬픔에 잠겨 있느니 차라리 일을 핑계로 하루를 꽉 채우고 있어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잠시나마 슬픔을 잊을 수 있고, 그 순간만큼은 토토가 없는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나를 억지로라도 바쁘게 만들고 있어요. 그 바쁜 하루 속에서 잠시나마 슬픔을 잊을 수 있다는 점이 요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즐겁진 않아요. 성취감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점에서는 또 다른 좌절을 느끼기도 해요.
다섯 번째 방법은 같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과의 교류입니다. 펫로스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채팅방에서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서로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건넵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죠. 반려동물이 건강하고 행복했을 때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그 시절을 함께 그리워하고 기뻐합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하나의 공통점으로 우리는 깊은 유대감을 나누고 있어요. 이곳에선 누구도 내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오직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토토의 사진을 합성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는 토토의 새로운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지만, 그 빈자리를 나 스스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무지개나라에서 토토가 뛰어노는 모습,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는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사진을 합성합니다. 마지막 3주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토토가 그곳에서는 잘 먹고 있다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상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토토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갑니다. 사실, 버티는 삶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 버팀이 더 격렬해졌습니다. 슬픔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은 어쩌면 서글픈 일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삶을 이어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슬픔 속에서 토토를 기억하기보다는, 그 아이가 내 삶에 가져다준 커다란 행복을 더 많이 기억하려 합니다.
토토는 내게 가장 확실하고 큰 행복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