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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삶의 방향을 만든다.

Charlotte’s Web (샬롯의 거미줄)

by 당이

교재를 만들기 위해 샬롯의 거미줄 (Charlotte’s Web) 책을 펼쳤다.

며칠을 미루다가 더는 미룰 수 없어 인상을 팍 쓰며 첫 장을 넘겼으나

그 순간부터 이 책은 망설임 없이 나를 끝까지 데려갔다.


윌버를 살린 것은 샬롯이 거미줄에 써낸 네 개의 단어였다.

some pig(특별한 돼지), terrific(멋진), radiant(빛나는), humble(겸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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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윌버의 모습을 보며 별이가 생각난 것은 안 비밀.


이 단어들은 윌버를 새롭게 규정했다.

사람들은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윌버를 보았고,

윌버는 결국 그 단어들에 걸맞은 돼지가 되어갔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미 어른이 된 나에게 남은 질문은 훨씬 단순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어떤 단어로 설명하며 살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단어를 선택할 것인가?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 하루의 결을 정리하고,

그 결이 결국 인생의 방향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선물하고픈 네 단어를 골라봤다.


Steady(흔들리지 않는, 꾸준한)

속도보다 지속을 믿는 마음.

결심한 방향을 오래 붙들어낼 수 있는 힘.


Loved(사랑받는)

이미 많은 순간 속에서 충분히 사랑받아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

그리고 그 사랑이 남긴 흔적을 ‘고마움’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감각.


Enduring(견뎌내는)

상실도 실패도, 수없이 흔들린 순간들조차

결국 시간을 통과해 다시 일어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어.

부서져도 다시 조립된 마음의 기록.


Unfolding(여전히 펼쳐지는 중인)

완성이 아니라 확장이고, 정체가 아니라 변화인 삶.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더 열릴 가능성의 동사형.


다행히 나는 윌버처럼 크리스마스에 햄이 될 운명은 아니지만,

단어 네 개 정도면 내 삶에도 방향 전환 구간 하나쯤은 생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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