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도망인가 전환인가

by 당이

나는 시간표 속에서 산다.

하루에 정해진 그 모든 것들을 지나고 나면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원하는 하루를 꿈꿔봤다.

시골에 작은 집을 하나 짓는 거다.

거기엔 꽃이 천천히 자라는 정원이 있고,

햇빛이 데워놓은 흙냄새가 코끝을 건드린다.

조그만 텃밭에서는 깻잎이 자라고, 오이가 매달리고,

아침마다 토마토를 따면서

안녕, 미안” 하고 혼잣말을 건네는 그런 삶이다.


창문 가득 해가 떠오르면 발을 몇 번 비비고 일어나

조용히 커피를 내린다.

잔을 손에 쥐고 나가면 별이가 먼저 문턱을 넘어

정원 한 바퀴를 살핀다.

나는 어제는 피지 않았던 꽃을 손끝으로 만져보고,

꽃향기도 맡아본다.


그런 하루에는

누가 나를 부르지 않는다.

누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그냥 앉아서 바람만 맞아도 되는 사람이 된다.


별이가 총총총 마당을 오가다가

내 발치에 와서 엉덩이를 툭 붙이는 모습이 떠오르면

그 장면만으로 이미 마음이 조금 환해진다.


아마 나는

그 작은 집에서 작은 숙박업도 할 것이다.

물론 반려견 동반.

손님이 오면 커피 한 잔 내어주고,

그들의 강아지가 별이랑 인사하는 동안

나는 그저 “편하게 쉬다 가세요” 하고 웃으면 된다.


내가 만들어 놓은 평온을

누군가 잠시 빌려 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날을 잘 산 기분이 들 것 같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날은 텃밭을 돌보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리고 나는 언젠가,

그 집 앞마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할 것이다.


아,

이게

내가 그렇게 오래 찾던 나의 평온이었구나.



.........

무슨 돈으로 그걸 해내고

어떻게 먹고살 거냐는 일단 다음에 생각하자.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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