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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이 Apr 03. 2022

평범한 봄

평범한 삶

움트는 싹들만큼,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들만큼이나

나도 이 계절을 기다려왔다. '생명'의  위대함이 극대화되는  시기엔 식물들  매섭고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자신이 잘 버티고 살아남았음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몸소 보여준다.


2018년 1월. 아빠를 둘러싼 이름 모를 수많은 기계들이 어떤 수치도 보여주지 않고 인공호흡기로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멎던 그 순간. 나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의사의 사망선고를 들었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그저 물끄러미 병실 침대 위에 있는 뼈만 남은 72세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비로소 이 상황을 실감하고 울기 시작한 때는 부고 소식을 듣고 내게 전화를 걸어  '여보세요'대신 엉엉 울기 시작한  한 친구와의 통화였다. 우리는 그냥 휴대폰을 붙잡고 대화 대신 서로의 울음소리만을 들었고 '지금 갈게'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종료했다.


장례식장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또 현실감 없는 시간이 계속되다 장지로 가는 길에  눈물을 쏟았다. 그러다 또 아무렇않은 듯 밥을 먹으며 화장이 끝나길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 앞에 펼쳐진 따뜻한 뼛가루에 휘청했다.


생각보다 나는 많이 울지 않았고 그래서 그랬을까? 후폭풍이 아주. 아주. 오래 남았다. 겨울 특유의 쓸쓸함을 유독 힘겨워하던 내게 그 해 겨울은 어느 해보다도 더 혹독했다.


어느 날 병실에서 아빠가 내게 '진희야, 평범하게 살아라.' 하셨다. 그 당시엔 저 말씀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딸이라면 특별하게 살길 바래야 하는 건 아닌가? 나의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못 보시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빠와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저 말씀이 가장 울림이 크다.



아빠가 떠나시고 그다음 해 봄. 딱 이맘때.

산책하며 만난 새싹들. 도처에 넘쳐나는  너무도 평범한 개나리, 복숭아꽃, 매화, 벚꽃에 위로를 받았다.


나의 도 다시 시작되어야만 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꽃들 저렇아름다운 봄을 알리는데

나의 계절만 겨울일 수는 없었다.


그 후에도 다시 겨울엔 조금은 쓸쓸하고 울적한 시기를 보내기도 하지만 이내 봄이 돌아오면 조금씩 마음 회복하곤 한다.

올해 내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한 날은 아무래도 오늘이다.

충분한 햇빛을 받으며 걸었고, 아무 생각 없이 엄마 오리와 새끼 오리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았고, 갑자기 날아든 까치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건넬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 먹으며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음식 맛에 비할 수 없게 훌륭한 사람 사는 맛, 어울려 사는 그 평범한 맛에 에너지를 얻었다. 우리들의 봄이 모두 평범하지만 싱그럽고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화분 들였다.


 긴 겨울을 기특하게 잘 버으니 이제 어떻게 평범하게, 좀 더 재미있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시기가 왔다. 흔히 말하는 '존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이왕 버티는 거

좀 즐겁게 버텨겠다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올해는 좀 평범하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역시 그건 좀 어렵겠지? 그래도 노력해보겠음..'으로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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