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미뤘다. 이놈의 건강검진.(아, 생일 안 지났으니까 38년으로 하자.) 기필코 올해는 해야지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이왕 할 거면 빨리하자 싶어서 결심하자마자 바로 예약을 했다.
첫 난관은 대장내시경 약 복용이었다.
알약이 비교적 편하다길래 알약을 선택했는데....
저 커다란 28개의 알약과 함께 무지막지한 양의 물을 마시는 것부터가 고통... 막판엔 물을 더 마실 수가 없어서 포카리 스웨트로 대체해서 마셨다. (저 약을 지금 사진으로 보는 건데도 갑자기 메슥거린다.)
그리곤 밤새 화장실에 앉아서 견디는 건 또 다른 고통. 당일 오전에 검진하러 가는 길에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쩌지 하는 정신적 고통으로 마무리.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검진받기를 권합니다....)
도착해서 웬 라운지로 안내받고 환복을 했는데
검진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과 내가 입은 옷, 슬리퍼의 색이 달랐다. 우연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고가의 검진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람들을(Most Valuable Guest) MVG라운지에서 쉬게 하며, 옷도 다른 색으로 입히고, 직원 한 명이 계속 동행하며 내 컨디션을 체크하며 다음 검사 대기시간이 없도록 다른 직원들과 소통하며 발 빠르게 움직인다. 그렇구나... 나는 50-60대에게 추천한다는 full 검진을 예약했으니... 자본주의 차암~ 좋네.
검사 종류가 많다 보니 피를 무지하게 많이 뽑았다. 아직도 다 안 뽑은 거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3통 꽉꽉 채워 뽑아서 빈혈 생기면 어쩌지 잠시 고민함.
수면내시경을 위해 마취주사를 놓는데 바늘을 손등에 꽂아서 정말 너무 아팠다. '아, 진짜 아ㅍ..' 하고 기억이 안 난다. 약의 힘이 두려워진 순간이었다. 약물 앞에 인간이 이렇게 무력하구나. 난 기억이 없지만 내 위장은 고통받았겠지..
그리곤 MRI, MRA촬영을 위해 이동하는데 직원이 와서는 혈액검사결과 신장수치가 낮아서(Crea, BUN) 조영제 사용이 어렵단다. 크레아티닌이나 BUN은 사실 토토 때문에 너무도 익숙한 용어라 그 와중에 알아먹는 단어가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 혹시 폐쇄(소)공포증 있으세요?' 기계에 들어가기 전에 직원이 물었다.
'어.. 음 그거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요.'
'모르시면 없으신걸 거예요.'
넵...
아무튼.. 길쭉하고 차갑고 하얀, 아주 아주 시끄러운 기계 속에 들어가서 조용히 미라처럼 누워있는데 내가 할머니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오버해서 풀로 검진을 받는다고 했나 싶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그 후에도 '제발 이게 마지막 검사라고 말해주세요'를 여러 번 마음속으로 외쳤으나 소용없었다. 장장 6시간의 검진이 끝나고 나는 기억이 없는 채로 집으로 실려와 제대로 정신이 든 건 그다음 날 저녁즈음..이었다.
저질체력 인정!
일주일 만에 카카오톡으로 검진결과가 도착했다. 오호..
좀 신경 쓰이는 것들만 정리해 보면
-갑상선 기능 저하증 (약 먹어야 함)
-간 수치 높음 (술 금지 + 약 먹어야 함)
-뇌 소혈관 허혈성 질환 (약 먹어야 함)
-대퇴골 골감소증 (골다공증 전 단계) (칼슘..)
-근육량 적음, 체지방량 높음 (운동...)
일단 예상을 못했던 건 뇌 소혈관 질환이었다.
기억력 및 주의집중 장애가 증상이란다.
증상을 듣고 나서 무릎을 탁 쳤다.
안 그래도 최근 치매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억이 잘 안 나고 집중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오늘 이 약을 처방받아왔는데 뭔가 서글펐다.
40년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치매 걸리면 정말 억울할 것 같잖아. 이제 겨우 마흔인데.(아니 서른여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