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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이 Sep 23. 2022

초보 운전 일기_운전과 인생의 공통점은?

이제는 중보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운전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운전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내가 이래 봬도 도로주행시험을 3번 만에 붙은 대단한 사람이다. 첫 번째 시험에서는 시험 보는 주제에 앞에 가는 차가 느리게 간다며 답답하다고 핸들을 꺾어 중앙선을 넘어 추월했다. 시험관 아저씨가 "도대체 당신 제정신이냐!"며 화를 내셨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출발하자마자 신호위반으로 떨어졌다. 세 번째 시험에서는 이제 저 앞에서 유턴만 하면 끝인데 왼쪽 차선의 차들이 비켜줄 생각을 안 하는 거다. 깜빡이를 켜고 그냥 무식하게 차 앞머리를 들이밀어 사고 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급하게 드리프팅하듯 유턴을 해냈다. 시험관 아저씨는 "하.. 합격은 시켜주는데 진짜 운전하지 마세요." 하셨다. 그래서였을까. 그 후로도 3년이 넘어서야 나는 운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서른일곱이 되던 해 조금 오글거리지만 나에게 '첫 차'를 선물했다. 하차감 끝내주는 고급차도 아닌데 정말 내 차는 세상 고맙고 기특하고 이쁘고 다 한다. 물론 초보의 운전 연수도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유튜브에서나 보던 김여사가 나였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했고, 차선을 제대로 지키며 주행하는 것도 어려웠으며, 커브를 돌 때면 브레이크를 밟으며 주행해 뒤차들을 답답하게 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강점은 끈질긴 과제집착력이다. 나는 거의 6개월간 매일 차를 타고 정해진 목적지 없이 운전 연습을 했다. 그런데 사실 주행보다도 주차가 문제였다. 주차를 못해서 매일매일 분노에 휩싸였다. 주차 연습만 3일째 하던 날은 주차를 너무 못하는 나한테 너무 화가 나서 엉엉 울었다. 결국 나는 근처 마트에 가서 RC카를 샀다. (RC카라도 벤츠로 사고 싶어 벤츠를 골랐다.) 그리고 7살 꼬마처럼 그 장난감 자동차를 이리저리 굴려보면서 주차 연습을 했다. 그렇게 며칠 하니까 조금씩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지금도 주차가 완벽하다고는 말 못 하지만 그래도 뭐 나쁘지는 않다.


   이제 운전을 시작한 지 3년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내 차에는 쨍한 노란색 초보 운전 자석스티커가 붙어있다. 나는 초보 정도의 주행 실력은 아니고 굳이 말을 만들어 낸다면 '중보'쯤 될 것은 같다. 그래도 초보운전 스티커는 한 1년은 더 붙여놓을 예정이다. 세상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느낀 것이 초보 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물론 초보 운전이라고 붙여 놓으면 괜히 별 것도 아닌 것에 경적을 울리고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진짜 "쌩 초보"는 아니라서 그런 것에 별로 겁먹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위협'보다는 '배려'를 더 많이 받았다.


   쌩 초보 때의 일이다. 그날은 큰 마음을 먹고 심호흡해가며 서울 숲으로 향했던 날이다. 내가 살던 곳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끼어들기를 못해서 1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다. 직진만 하다가 부산 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던 그런 날이었다.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차는 너무 가깝고, 또 어떤 차는 지금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또 금방 가까워질 것만 같으니까..... 그러다 용기를 내서 핸들을 꺾었는데 옆 차선에서 오던 택시와 부딪힐뻔했다. 택시는 멈춰 섰고 택시 아저씨는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운전 그 따위로 할래?" 나는 보조석에 늘 구비해두었던 여분의 초보운전 스티커를 창문 밖으로 내밀며 "저.. 제가 초보라서요..... 지금 계속 직진만 하고 있거든요.." 그 아저씨는 한숨을 푹 쉬시더니 "지금 가. 지금. 내가 막고 있잖아."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차선을 변경할 수 있었다.


   목적지인 서울숲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차가 안 그래도 서툰 나였는데 좌절스럽게도 평행 주차할 자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주차관리요원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주차를 해내고 서울숲을 거닐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끼어들기가 힘들어 도로에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뒤에 있던 차들도 빨리 나가라며 경적을 울리고 나는 차 안에서 거의 울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끼어들 차선에서 오고 있는 트럭 한 대가 계속해서 경적을 울렸다. "뭐야.. 또.. 왜 그래.. 무섭게...."하고 있는 찰나 트럭이 멈춰 섰다. 그리고는 "지금이야 지금! 지금 들어가요!"라고 외쳤다. 나는 무사히 끼어들었고 감사의 표시로 비상 깜빡이를 켰다. 그리고 쭉 주행을 하고 있는데 그 트럭 아저씨가 옆 차선으로 와서 또 클락션을 울렸다. "아... 또 왜......" 하며 창문을 열었는데 "알았어요. 알았어. 미안하고 고마운 거 알았는데 이제 비상 깜빡이 꺼요! 누가 보면 차에 문제 있는 줄 알잖아! 몇 번 깜박이게 두고 바로 꺼야지!!!" 그렇구나... 깜빡이를 켤 정신은 있어도 끌 정신은 없던 거다.


어찌 됐든 운전이 주는 이점은 어마 무시한 기동력뿐만 아니라 인생에 주는 교훈이다.

운전 3년 차가 깨달은 운전과 인생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1. 룰(교통법규)만 지키면 대부분 문제가 없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2. 이 길 아닌 것 같으면 좀 돌아가도 된다. 유턴하면 되니까.


3.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했다면 사과해라. 비상 깜빡이 몇 번에 구수하게 쏟아내던 욕이 사그라든다.


4.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5. 나의 안전을 위해서는 외장보다는 오히려 내장이 중요하다. 어차피 나는 차 안에 있는 사람이다.


6. 주행하다 보면(살다 보면) 위기의 순간에 나한테 없었던 것만 같은 기능(재능)이 튀어나온다.

:막상 주행하다 보면 잊어버리게 되는 옵션들이 있다. 예를 들어 에어백 같은 것 말이다. 에어백이야 당연히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위기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 녀석의 위대함이나 성능을 몸소 깨달을 수가 없다.


에어백을 경험해보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위기의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에어백 기능처럼 나한테도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 발휘할 수 있는 기지나 재능이 있다는 걸 믿고 있다면 세상이 좀 살만해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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