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난 달 앞에 서 있었다

by 구름마중

“다른 사람보다 본인에게 먼저 착한 사람이 되세요!”라고 말했던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게 되었다. 유순한 편이었고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혜민 스님, 유학시절 기센 학생들과 함께하다 보니 모두가 기피하는 일만 맡게 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까만을 염려했고 나를 아껴준다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혜민스님.


혜민 스님 글 속에 내가 있었다. 나 역시 어릴 적 ‘착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다섯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나 엄마의 관심을 받으려면 떼를 쓰고 고집부리는 방법보다 어른들의 말을 거스르지 않고 엄마, 할머니 일을 도와주는 착한 행동을 했다. 그렇게 하면 불편하지 않는 방법으로 나에게 관심을 주었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착함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배려 있는 상대가 되었지만 나와 다른 이기적인 누군가에게는 내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혜민 스님이 말한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는 있다”라는 말은 내가 글쓰기를 통해 관통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주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그것을 지나온 혜민스님처럼 나도 글쓰기를 통해 내 마음을 위로해주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감정의 굴곡 속에서 나는 내면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채워지지 않고 끊임없이 갈구하는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에세이 쓰기를 시작하면서 착한 상자에 갇혀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 질문하기 시작했다. 사랑받고 싶었구나!, 인정받고 싶었구나!


어린 시절 부하지 않은 환경과 질투를 연발하는 사건들, 엄마로부터의 결핍된 사랑과 채워지지 않는 삶의 언어에서 나는 차갑고 어두운 달 뒷면과도 같았다. 그래서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아마도 그 시절 부모의 사랑방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어떤 누구에게도 품어주는 말을 배우지 못했다. 지독한 삶을 지탱하는 순간들 먹기 살기 위한 언어를 터득했고 그 어려움을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못한 채 엄마 스스로를 믿고 버텼다. 그리고 우리 다섯 형제를 키웠다.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엄마지만 엄마는 다섯을 키우는 동안 물려줄 수 있는 거라고는 살아남기 위한 억척스러움, 버팀이었다.


나는 고급진 언어기술은 없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열정과 도전, 버팀의 지혜를 습득했다. 그것으로 글을 쓰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하루하루 나의 오늘을 살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를 탄다. 허리를 숙여 길가에 핀 작은 생명에게 소중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리움을 느끼고 해 질 녘 "밥 먹어라"외치던 엄마의 목소리, 일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논과 밭으로 나가면 엄마 가방에서 밀려오는 엄마의 향기였다. 어느 늦은 여름날 해 질 녘 대청마루에서 이불홑청을 꿰매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엄마의 관심과 인정보다 곁에 엄마가 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따뜻함이었고 엄마는 포근함이었다. 엄마는 이미 내 앞에 서 있었다. 환하고 밝은 달.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 중 각자의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 또한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준 글쓰기로 "이미 나는 달 앞에 서있다" 15편까지 완성하고 삶의 버팀이 되어준 엄마와 나의 소소한 이야기를 읽어주는 작가님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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