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단단했던 그녀의 하루를 멀리서 지켜보며
오늘은 회사에서 늦게 끝났다.
늘 그렇듯, 퇴근 후에는 러닝화 끈을 조여 매고
러닝머신 위에 오른다.
하지만 오늘은 뛰는 것보다 걷는 데 더 마음이 갔다.
지치기도 했고, 마음이 조금 먹먹하기도 했다.
오늘 제니에게 카톡이 왔다.
퇴근이 늦었다고 했다.
그래도 막걸리 한 잔 하고, 반디랑 산책도 다녀왔단다.
그 말에 마음이 이상했다.
혼자 보내는 하루, 그리고 씩씩한 아내
제니는 요즘 거의 혼자 윤호를 돌보고,
혼자 식사하고, 혼자 시간을 견딘다.
나는 회사 기숙사에 있고,
주말에나 겨우 얼굴을 볼수 있을것 같다.
그런데 그 멀리 있는 거리보다
더 멀리 느껴지는 건
제니가 혼자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다.
“혼자 막걸리 한 잔 했다.”
“반디랑 산책했다.”
그 담담한 말들 안에
외로움과 성실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울트라 레드
며칠 전 계약한 테슬라 모델 Y.
제니가 오랫동안 타던 산타페를 대신할 새 차다.
색상을 고르며 스텔스 그레이와 울트라 레드 사이에서 고민했다.
제니는 울트라 레드를 선택했다.
조금 더 비싸고,
더 눈에 띄지만,
그게 더 예쁘다고 했다.
나는 결국 제니의 선택을 따랐다.
이건 차를 고르는 게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존중하는 선택이었다.
아마 제니는
늘 실용적인 선택을 해왔던 사람이라
이런 ‘자기 취향’ 하나쯤은 존중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알 수 있을 만큼
조금은 그녀를 사랑할 줄 아는 남편이고 싶었다.
멀리서 보내는 존중
요즘 나는 제니와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마음의 거리도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거리 속에서도
나는 그녀를 존중하고 싶다.
하루를 꾸려내는 그녀의 묵묵한 힘을,
말없이 감당해내는 그녀의 성실함을.
그래서 오늘 울트라 레드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 혼자만 아는 작은 다짐을 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조금 더 말없이 안아주자.
그리고 조금 더 오래 지켜보자.”
오늘은 5km를 걷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문득,
제니의 하루가 얼마나 대단한 하루였는지
비로소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