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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Sep 19. 2022

식당이나 해볼까? #08

-맛있게 드셨어요?


익숙한 얼굴들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단골손님이 생기고 있었다. 집에서 충분히 해 먹을 수 있는 것을 누가 사 먹냐는 엄마의 우려와는 달리 ‘소고기뭇국’은 판매가 괜찮았다. (사실 엄마의 생각과는 달리 요즘 소고기뭇국을 집에서 쉽게 해 먹지는 않는다.) 아직 줄을 서면서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먹어본 사람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찾아와서 먹곤 했다.


이즈음 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식당은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콘셉트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저녁에 술집으로 운영할 생각으로 오픈한 ‘연남그곳’은 술집도 아니고 밥집도 아닌 어정쩡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술집에서 점심을 파니, 우선 사람들이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맛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이다. 가끔 아내와 그 점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나라도 술집에서 점심을 팔면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간 인테리어 또한 점심에 파는 한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점심을 메인 장사로 하지 않을 것이니 기대매출을 낮게 책정했고 그래서 고민도 크게 하지 않았다. 그저 맛만 있으면 입소문으로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안일했다.


예상 매출은 점심과 저녁을 3:7 정도로 생각했는데 현실은 5:5 였다. 저녁 매출이 생각보다 더디게 오르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점심 매출이 기대보다는 잘 나오고 있었다. 고민이 됐다.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할지….

저녁에도 식사메뉴로 판매를 하면서 아예 밥만 파는 식당으로 운영을 할지 계산기를 두드리며 매일같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밥집으로만 운영한다면 이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가게 위치도, 가게 부지도, 가게의 규모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첫 달 정산을 해본 이후 더욱 그랬다. 장사라는 게 조금씩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나는 마음만 급하고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아내는 어떻게 처음부터 수익이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고 물으며 당분간 자신이 받는 월급으로 생활을 해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그리 든든하거나 달갑지 않았다. 그즈음 아내는 회사일로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퇴근 후, 아내는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말로 쏟아내곤 했다. 회사를 함께 다녔던 나는 아내의 상황과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나에게 작은 일도 잘 얘기하고 조언을 구하려 했는데 그전과 달리 나는 아내의 일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내 코가 석자였다.

그냥 회사를 관두고 쉬라고 하고 싶었지만 당장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관두라고 말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말뿐인 허세였고 무책임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당장 관두고 싶은 회사를 왜 계속 다니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불안정은 번아웃이 온 아내가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게 사실이었다.

어떻게든 가게를 살려야 했다.

 9월에 오픈 준비를 하고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니 날은 조금씩 쌀쌀해지고 있었다. 뜨끈한 국밥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면 불수록 점심에 손님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리고 드디어 식당에 자리가 없어도 손님들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순전히 입소문을 통해 주변 직장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모험심이 많은(?) 손님이 우연히 점심을 먹으러 왔다가 직장 동료를 데리고 오고, 그 사람들이 또 동료들을 데리고 오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다.


“여기 그렇게 맛있다며? 완젼 집밥이라니까! 옛날 우리 엄마가 끓여준 뭇국 같아.”


작은 매장이라 손님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들렸다.  맛에 대한 칭찬을 할 때마다 이상한 사명감이 피어났다.


‘더 맛있게, 더 맛있게 해야지!’


그즈음부터 손님들이 계산을 할 때, 카드를 받으며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맛있게 드셨어요?”


대부분의 손님들이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정말 맛있었어요.”


“진짜 엄마가 해준 맛이었어요.”


“여기 밥집 있는지 몰랐는데, 앞으로 자주 올 거예요.”


나는 칭찬에 고파있었다. 그래서 인사를 가장해 자꾸 물어봤는지도 모르겠다. 맛있게 드셨냐고….


그렇게 손님들과 계산을 하며 가벼운 말을 주고받는 게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그날도 똑같이 카드를 건네는 손님에게 웃으며 물었다.


“맛있게 드셨어요?”


“뭐. 그럭저럭.”


반말투의 짧은 대답이 돌아와 나는 손님을 다시 봤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손님이었는데 눈매가 날카롭고 얇은 은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 네.”


대꾸할 말이 적당치가 않아 말을 얼버무리며 카드를 건네니 손님이 검지와 중지만으로 카드를 받으며 얘기했다.


“반찬이 너무 없네요. 반찬만 좀 더 있으면 자주 오긴 할 텐데…”


손님의 말투가 좀 신경질적이라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내려 하다가 이유는 알려줘야 할 거 같아서 대답했다.


“소고기뭇국에 조금 더 집중하시라고 최소한의 반찬만 제공드리고 있네요.”


손님이 어디서 말대꾸냐는 식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돌아서며 얘기했다.


“실력이 안되면 반찬을 사서라도 써야 할거 아니야….”


참을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내가 그에게 저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잘못을 했을까? 자신이 하고 싶을 말을 해서 시원하다는 투로 문을 당당하게 열고 나가는 그를 불러 세워 말하고 싶었다.


‘다시는 우리 가게 오지 말라고….’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손님들도 많았고 당황하며 생각하는 동안 이미 타이밍도 놓쳤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무시하는 듯한 그 눈빛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식당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안 가면 그만이다. 불친절하거나 음식이 비위생적이면 따지거나 해서 최악의 경우, 음식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반찬의 가짓수가 작다고 따지는 경우는 내 상식선에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부터 나는 그 사람이 다시 가게에 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화가 났고 상처를 받았다. 그날부터 나는 어느 누군가에게도 ‘맛있게 먹었냐’고 묻지 못했다.


그즈음 집이 근처에 있어 점심을 먹으러 온 친구가 조심스레 조언을 했다. 음식 맛은 손색이 없는데 반찬을 더 주면 직장인들이 더 좋아할 거란 얘기였다.


“특별한 반찬 필요 없어. 분홍 소시지 같은 거, 그건 거 구워주면 직딩들 진짜 좋아한다. 너무 어렵게 가지 마! 쉽게 쉽게 사람들은 쉬운 거, 익숙한 거 좋아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친구의 조언은 말 그대로 조언으로 들렸다. 참견이나 오지랖으로 들리지 않은 이유는 그 친구가 진정으로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방문하는 손님들이 ‘소고기뭇국’에 집중하게 하고 싶었다. 건강하게 먹는 한 끼에 분홍 소시지 반찬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국에 집중하기 위해 양배추 절임과 김치를 반찬으로 내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국밥집이 김치 하나만으로 손님들을 끌고 있지 않은가! 국 하나만 맛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국밥 전문점이 아니었다. 점심식사를 곁다리로 파는 술집이면서 사람들이 국밥 전문점으로 봐주기를 원하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갖추고 있지 않으면서 손님에게 잘 봐주기만을 원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장사를 하니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소고기뭇국’전문점으로 시작했다면 인테리어도 그에 걸맞은 식당에 맞게 했다면 손님에게 ‘반찬 할 실력이 없다면 사서라도 하라’는 얘기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반찬을 늘리기로 했다. 엄마는 사실 처음부터 얘기했던 점이라 일이 늘어났는데도 반겼다. 기본찬을 3가지로 늘리고 직장인들이 좋아하는 각종 부침개나 분홍 소시지도 준비했다. 반찬을 늘리자 생각보다 손님들이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기쁘지 않았다. 나에게 수치심을 준 손님이 다시 가게에 왔다가 반찬 가짓수가 늘어난 것을 보고는 자기의 조언 덕분에 반찬이 늘었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생각만 해도 너무 싫었다. 만약 그 사람이 다시 오면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매일이 고민이었다.


‘손님 때문이 절대 아닙니다. 당신은 밥 하나 사 먹으면서 그렇게 반말로 나에게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화내지 말고 최대한 정중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게 이기는 거라 생각했으니깐…..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시는 그 손님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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