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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Sep 14. 2022

식당이나 해볼까? #07

-오픈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

식당을 연지 한 달이 지났다.

단골손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힘이 났다. 최소한 음식 맛이 없지는 않다는 증거였다.


점심에는 소고기뭇국을 거의 매일같이 드시는 분이 있었다. 나라면 질릴 만도 한데 매일 맛있게 드셔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직 자리를 잡지 않은 가게이기 때문에 몇몇의 손님이 종종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앞으로도 장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원동력이 됐다.


자주 찾아주는 손님들은 특별한 요구도 없었다. 별말 없이 묵묵하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주었다. 나는 손님들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어떤 손님은 소고기뭇국에 파를 더 넣어 드시는 걸 좋아하고 어떤 손님은 김치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드신다.

나는 손님들이 따로 요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들의 식성에 맞게 서비스를 했다. 파를 많이 드시는 분에겐 파를 따로 챙겨드리고 김치를 많이 드시는 분에게 김치를 배로 챙겨드리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손님과 나 사이엔 작은 신뢰가 쌓이고 있었다.


손님들은 맛있다는 얘기를 기꺼이 하지 않는다. 다만 또 찾아주면 그게 적어도 입맛에는 맞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자주 찾는다고 해서 꼭 ‘맛있다’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대안이 없어서 종종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러니까 손님의 입에서 ‘맛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점심식사는 시간이 지나면 자리가 찰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4인 테이블 2개, 2인 테이블 5개도 못 채운다면 사실 장사를 그만해야 한다. 더 하고 싶어도 이익이 남지 않아 할 수가 없다. 다행히 점심 영업은 손님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그러나 밥집으로 운영하는 점심 영업과 달리 술집으로 운영을 하는 저녁 영업이 여전히 걱정이었다. 한식 메뉴를 테마로 연남동에서 장사를 해보겠다는 의지는 오픈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꺾이고 있었다.


가게를 알아볼 때, 일본식 주점과 파스타집이 가득한 연남동을 걸으며 ‘이곳에서 한식을 하면 분명히 먹힐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동안 하지 않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을 오픈해서야 깨닫게 되다니 어리석었다. 유동인구가 많지만 20대가 대부분인 연남동에서 한식은 맞지 않는 테마였다. 게다가 아무런 경험도 없는 내가 한식으로 장사를 해보겠다는 건 그야말로 ‘무식해서 용감한’ 결정이었다.


나는 내 생각이 특별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라면 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연남동에 일본식 주점과 파스타집이 많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연남동은 20대들이 데이트를 하러 오는 곳이다. 그들이 좋아하고 쉽게 택할 수 있는 아이템을 다른 사장님들은 선택했던 것이고 겹치는 음식점이 많더라도 다 장사가 잘되는 이유가 있던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게다가 20대들에게 크게 매력이 없는 업종으로, 그것도 외식업에 경험도 없는 내가 시작을 했으니 잘될 리가 만무했다.


나는 자신감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손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빈자리가 많은 날이 더 많았다. 한참 손님이 와야 할 시간인데 손님이 없는 날은 주변을 산책하며 다른 곳을 살폈다. 우리 가게에만 손님이 없는 것 같았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가득 차고 줄까지 서는 주변의 식당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책망했다.


나는 도대체 여기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도 연남동엔 20대만 있는 것은 아니니깐 시간이 지나면 3,40대들이 찾아올 수 있을 거란 막연하고 대책 없는 믿음이 있긴 했다. 하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그건 더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속이는 진통제 같은 현실 도피성 망상이었다.


저녁 영업은 죽을 쑤고 있었지만 점심 손님은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점심 손님까지 없었다면 당장 빚을 내서 가겟세를 메꿔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달을 영업하고 결산을 해보니 결과는 처참했다.


가겟세, 각종 공과금과 재료비 그리고 어머니 월급을 제외하고 나니 90만 원이 남았다. 일주일에 하루 쉬고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한달동안 꼬박 일해서 번 돈이었다.


첫 달부터 버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고 쳐도, 가게를 알리지 않아서 지인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고 쳐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슬프지도 않았다.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냥 멍했다.


아내가 한 달의 수입 결산을 보고 말했다.


“그래도 적자는 아니네?”


아내는 나를 위로하는 말이었지만 나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되려 아내에게 언짢다는 투로 대답했다.


“당신은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니, 한 걸음 뒤에서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여유롭지만은 않네. 당연히 처음부터 벌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그렇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하다가는 6개월도 못 버티겠다 싶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오픈 소식을 알렸다. 가게가 자리 잡히면 천천히 친구들에게 알릴 계획이었지만 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체면만 차리고 있었다.


뒤늦게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매출을 올려주고 봉투를 가져왔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개업식을 하는 이유를….


개업을 하면 어떤 가게든 오픈한 지 3개월까지는 매출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가족이나 지인들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라고 격려를 해주는 자리가 개업식인 것이다.


나는 신세를 지는 게 싫어서 개업식을 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그동안 꽤 많은 개업식에 참석해서 그들의 성공을 기원하고 격려했다. 내가 가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남들이 오는 것은 부담스럽게 생각한 내 잘못이었다.


그렇게 나는 개업식도 하지 않은 채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게 되었다. 개업식을 하지 않은 것은 이도 저도 아닌 최악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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