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손님
습하고 더운 여름을 보낸 게 언제였는지 완전히 잊혀진 완연한 가을이었다. 새벽에 여우비가 잠시 내려서 으슬으슬한 기운까지 감돌아 곧 겨울이 올 것만 같은 10월의 아침이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첫 손님이 가게로 들어왔다. 20분 전에 가게 오픈 여부를 물어보고 간 일본인이었다. 30대 초반의 남녀였는데 부부나 연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첫 손님이 일본인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오픈 시간이 맞지 않아 돌려보냈는데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소고기뭇국
-멸치국수
-비빔국수
신중할 것 같은 두 명의 일본인은 고민하지 않았다. 소고기뭇국을 가리켰다.
“이거 두 개.”
외국인의 불완전한 한국어 주문을 듣고 있자니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주문을 해왔던가!
일본에서 “고레 이치, 고레 니.”를 당당하게 외치던 과거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갓 지은 밥을 소복하게 퍼 담고 반찬을 넉넉히 담았다. 준비해둔 소고기뭇국을 뜨끈하게 덥혔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신중했다.
첫 손님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을 아침과 어울리는 리사 오노 특유의 보사노바풍 음악이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함께 살랑살랑 춤추듯 흐르고 있었다.
손님은 내가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손님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곁눈질로 두 사람에게 주문을 외웠다.
‘빨리 첫술을 떠라. 빨리 첫술을 떠라.’
설레는 눈으로 음식을 보던 남자가 먼저 첫술을 떴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남자의 얼굴에 은은하게 미소가 퍼졌다. 찰나였다. 남자는 앞의 여자에게 성급한 손짓으로 빨리 먹어보라 권했다.
‘됐다. 됐어.’
그동안 모든 준비가 비로소 완성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또 손님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키가 190cm는 족히 돼 보이는 백인 남자였다. 그 역시도 ‘소고기 뭇국’
아직 빈자리가 많이 남아 있는데도 이미 성공한 것만 같아 들뜨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든 계획이 변경되기 시작했다.
‘그래. 여긴 외국인들이 바글바글한 연남동이었어. 그들에게 소고기뭇국 맛집으로 알려진다면, 외국인들이 줄을 서는 한식 맛집이 될 수 있을 거야.’
또 손님이 들어왔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었다. 앞으로 단골이 될 가능성이 높은 손님들이었다. 메뉴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며 메뉴판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소고기뭇국이 메인입니다.”
“네. 그렇군요. 멸치국수 둘, 비빔국수 둘 주세요.”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했다. 내가 아무리 추천해도 손님은 먹고 싶은 게 따로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쳇! 맛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구만. 역시 국수를 뺏어야 하나?’
12시가 가까워 오자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방도 없이 가볍게 나온 걸 보니 모두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이에 처음으로 온 일본인 손님이 일어났다. 카드를 건네받고 계산을 하는 짧은 순간, 손님에게 물었다.
“오이시 데스까?”
되지도 않은 일본어였지만 첫 손님의 반응이 궁금했다. 남자가 대답했다.
“혼또니 오이시 데쓰.”
여자도 남자의 대답에 동의한다며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눈을 맞췄다.
“감사합니다. 저희 가게 첫 손님이셨습니다.”
그들은 ‘감사합니다’까지만 알아들었을 테지만 나는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었다.
일본 손님이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서자마자 백인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다. 슬쩍 테이블을 보니 깨끗하게 모든 음식을 먹은 후였다.
“ Did you enjoy your meal?”
“Yes! very good. thanks. it’s a soul food.”
“Thank you. my mom cooked it.”
엄마를 내가 가리키자 백인이 엄마에게 커다란 손바닥을 활짝 펴고 미소를 지으며 흔들었다. 엄마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백인이 나감과 동시에 다시 손님이 들어왔다. 4명이었다. 자리에 앉자 손님에게 설명을 하고 돌아섰다.
“저희는 소고기 뭇국이 메인입니다.”
손님들은 메뉴판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앞뒤로 돌려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저기요? 여기 카레집 아니에요?”
카레는 이전 가게에서 팔던 메뉴였다.
“아. 네. 카레집은 이전 가게고 이제 가게가 바뀌었습니다. 메뉴가 바뀌었고요.”
손님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수군대다가 ‘끼익’ 의자가 끌리는 소리를 내며 동시에 일어났다.
“카레집인지 알고 와서요. 담에 올게요.”
간판도 바뀌고 주인도 바뀌었는데 식당이 바뀌었다는 걸 못 알아본다는 게 의아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손님들은 식당 이름보다는 장소와 메뉴로 기억한다.
잘 못 알고 온 손님들이 나가고 식당에 마지막으로 있던 손님들이 일어섰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뭐….”
맛있게 먹었는지 맛없게 먹었는지 모를 대답을 남기고 손님이 떠났다. 손님이 나가는 걸 보고 테이블을 확인하니 국수가 조금씩 남아 있었다.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양이 너무 많았다. 가게 오픈 전, 준비할 때부터 엄마의 국수는 엄마가 예전에 일하던 국숫집에 맞춰져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엄마와 상의하고 고치려 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엄마의 1인분은 요즘 20대 여성의 2인분과 맞먹는 양이었다. 양이 많으면 좋아하던 예전과는 달리 양이 많으면 부담스러운 요즘이다. 개선할 점이 손님과 부딪히며 확실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지만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다.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아서 첫날부터 손님들이 돌아가면 어쩌지라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손님이 빨리 끊겼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어 서고 있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엄마는 애먼 냉장고만 닦고 또 닦고 있었다. 나도 가만히 있기가 답답해서 밖에 나가 간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깨달았다.
‘이래서 요란한 화환이 필요한 거구나. 새로 개업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중에 그만한 것이 없구나. 그저 요란한 게 싫다는 이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부린 것이 결국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점심 마감을 하고 매출을 체크했다.
98,000원.
회사에 있는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점심 어땠어? 괜찮았어?
-궁금해죽겠네.
-사람 많았어?
한참 후에 아내에게 답장을 했다.
-98,000원
-아직 사람들이 몰라서 그럴듯
-곧 좋아지겠지 뭐
의연한 척했지만 나는 의심의 의심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