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기분
홍대입구 3번 출구로 나오면 경의선 숲길이 이어진다. 이름하여 ‘연트럴파크’.
그 주변 일대가 동교동, 연남동인데 예전에는 철길 주변으로 다세대주택이 촘촘하게 있었던 곳이다. 작은 평수가 모여있던 다세대주택을 상업시설로 변경하다 보니 동교동, 연남동 일대에는 작은 매장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줄줄이 이어진 각양각색의 매장을 구경하는 맛이 있다.
동교동, 연남동 주변으로는 규모가 작은 게스트하우스도 많다. 홍대입구역이 공항철도와 연결되어 있어 여행자들이 거점으로 삼기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강남보다는 공항에서 가깝고 숙박료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니 한국을 여행하는 많은 여행자들이 홍대 인근을 여행의 시작이나 끝점으로 삼는 편이다.
본격적으로 가게를 알아보기 전, 연남동 일대를 걸었던 나는 길을 걸으며 수없이 마주치는 외국인들을 보고 가게를 이곳에 오픈하기로 결정을 했다. 여행객들이 많은 동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그대로, 가게에는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심지어는 첫 손님도 일본인이었다.) 가게가 자리 잡기 전이라 손님이 없을 때 찾아온 외국인 손님들은 매출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홍콩에서 온 50대 부부는 3달에 한번 정도 이대에서 공부하는 딸을 보러 한국에 오는데 우연히 가게에 와서 소고기뭇국을 먹고는 그 후로 한국에 올 때마다 가게에 들렀다. 가끔 오는 자기들을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고마워서 더 친해지고 싶었다.
한국을 한 달 동안 여행 중인 프랑스인 ‘루메인’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4번이나 ‘청어알비빔밥’을 먹으러 왔다. 그는 한국에서 먹은 그 어떤 비빔밥보다 ‘청어알비빔밥’이 맛있다고 했다. 무조건 생각날 맛이라며…
호주에서 온 연인은 저녁에 와서 다양한 메뉴를 먹고는 그다음 날 첫끼를 해결하러 또 가게에 들렀다. 전날 저녁 맛있게 먹었다길래 점심은 우리 엄마가 직접 만든다고 말했더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손님이 한 테이블도 없던 날, 자기들이 들어가도 되겠냐고 정중하게 물어보고 들어온 영국인 가족은 메뉴판에 있는 모든 음식을 시켜 먹고는 훌륭한 시간을 보내게 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돈을 받는 일이지만, 나는 작은 나의 집에 외국 친구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기분으로 일했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한국 문화나 관광지도 짧은 영어로 설명해주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보다 외국인 친구들이 많이 찾아주니 그들과 더 재미있게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쿠킹클래스’였다.
한식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을 위해 한 달에 한번 쿠킹클래스를 열고 시장도 함께 보며 요리를 알려주면 어떨까?
재미도 있고 수익도 낼 수 있는 흥미로운 계획이었다. 4명 정도만 모집해서 내 차에 태워 다니며 시장도 함께 보고 가게로 와서 요리를 만들고 음식을 나눠 먹을 생각이었다. 에어비앤비에 체험강좌를 오픈하기만 하면 되니 준비만 잘 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렜다. 가게를 하는 동안 해외여행은 당분간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해외를 가지 않고도 나의 공간에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여행할 곳의 비행기표를 결제한 것만 같은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어떻게든 말은 통하겠지만 조금 더 깊은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내가 노력해야 했다.
11시~1시까지는 인근의 회사원들이 꾸준히 찾아주고, 1시부터~3시까지는 지나다니던 외국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가게를 찾아왔다. 그렇게 점심시간에는 꾸준히 손님이 늘고 있었다.
조금씩 일이 재미있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뉴스에서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다. 중국에서 시작된 ‘우한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도 전염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