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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Apr 24. 2024

미식이란?

나에게 맞는 식당을 찾는 기쁨

어제 오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하루에 오는 전화 중 30%는 광고 전화라 부재중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예약 전화가 올 수 도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전화를 받는 편이다.


-여보세요.


-아. 네. OOOO 사장님이시죠? 다름이 아니고 요즘 다들 어려우시잖아요. 그래서 사장님께 무료로 광고를 해드리는 좋은 기회가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아. 네. 선생님. 좋은 기회로 전화주신 건 감사하지만 제가 원래 업체에게 리뷰광고를 맡기지 않아요. 그게 원칙이에요.


광고 전화를 하는 사람의 나이가 어떻게 됐든 선생님이라고 통일을 하고 있는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정중하게 전화를 받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최대한 정중하게 구는 것이 가장 단호한 거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전화를 그냥 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는 중간이 끊어 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항상 첫 문장은 끝까지 듣고 끊는 편이다. 그런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아니. 얘기도 듣지 않고 끊으려고 하지 마시고요.


-아. 네. 제가 시간이 마땅치가 않네요. 그동안도 광고는 안 했어요. 그러니까. 끊을게요.


정중하게 거절하면 대부분 알겠다며 끊는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말이 끊질기게 이어질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울렸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받았다. 순식간에 마음이 변했다. 상대방이 시비를 걸면 받아줄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  자꾸 귀찮게 하면 쌍욕지거리를 해주리라.


-아니. 끝까지 얘기를 듣지 않고 끊어버리시면 어떡해요? 제가 얘기도 안 했잖아요.


-제가 얘기를 끝까지 들어야 하나요? 저는 안 한다고 했잖아요.


-아니. 끝까지 얘기도 안 들었잖아요.


-아니. 안 한다니까요.


-아니. 끝까지 얘기도 안 들었잖아요.


같은 말만 반복하는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진짜로 화가 올라오는 것만 같아 '전화 끊습니다.'라고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야 할까?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야 할까? 어쨌든 나는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식당을 5년째 운영하며 광고회사에 의뢰를 해 리뷰광고를 한 적이 없다. 그게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 자부심은 있다. 일단 평점이나 리뷰가 돈을 받고 작성한 것이 아니니 당당하다.

그렇다고 광고를 하는 것에 대해 비난을 하지는 않는다. 음식의 맛보다 마케팅이 더 우선시되는 최근의 요식업 흐름에서 광고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내가 광고를 하지 않는 것은 우리 매장과 맞지 않아서다.

광고 효과로 순간적으로 손님이 몰릴 수는 있겠지만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는 우리 매장의 경우는 기다리는 손님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매장도 갑자기 늘어난 손님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음식의 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매장 앞에 손님 줄을 세워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보여주기를 할 수 있지만 그건 눈속임에 불과하다. 실제로 광고할 때는 긴 대기 줄을 세우고 대박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광고를 하지 않을 때는 손님이 없어 장사를 접는 매장을 장사하는 동안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식당을 한다는 것은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일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나의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수익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식당을 운영할 수도 있다. 요즘은 그런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음식에도 유행이 있다. 그 유행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고 유행에 쫓아가지 못하는 작은 식당들은 손님이 없는 빈 식당을 바라보며 자책을 하다가 빚만 지고 식당문을 닫는다. 주변에 작은 식당들이 자주 바뀌는 이유다.


매장 앞에서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찾아보며 리뷰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가게를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오랜만에 나왔으니 작은 실수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 남들이 먼저 평가한 블로그 포스팅이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참고해서 식당을 선택하는 것. 물론 그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광고성 정보만 찾아 다니다 보면 안전할 수는 있겠지만 우연히 들어갔는데 내 취향에 딱 맞는 식당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느낄 수가 없다.


미식(美食)의 사전적인 의미는 ‘좋은 음식’, ‘좋은 음식을 먹는 행위’를 말한다.


나는 주로 블로그나 인스타를 참고하지 않고 식당을 선택하는 편이다.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게 한다. 오로지 느낌에 의지해서 식당을 찾아다니다 보면 시행착오도 많다. 그런데 시행착오를 계속하다 보면 그게 또 재미가 된다. 한 끼 정도는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걸 먹으면 어떠랴? 오로지 내 느낌으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후회도 별로 없다. 어쩔 땐 너무 맛이 없어 웃길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쌓아질수록 내가 진짜 좋아하는 맛을 잘 알게 된다. 경험이 쌓이면 시행착오가 줄어든다. 식당 찾기도 마찬가지다. 식당의 외관, 식당을 구성하는 메뉴, 식당의 간판, 식당의 이름, 식당 간판의 서체까지도 때때로 식당을 선택하는 요소가 된다.


취향이 생긴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취향이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식(美食)이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행위다. 남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이 아니라 자신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비싸고 좋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칭찬이 아무리 자자해도 나에게 맛이 없으면 맛없는 것이다.


나는 미식(美食) 보다 미식(迷食)을 좋아한다. 여기서 말하는 미식(迷食)은 길을 헤매다가 만나는 음식을 말한다. (미혹할 미 迷 + 음식 식食을 합친 이 단어는 어느 날 미식에 대해 고민하다가 만든 말장난 같은 나만의 단어 조합이다.) 사람들이 자주 가지 않을 것 같은 미로(迷路) 같은 골목골목을 헤매다가 만나는 작은 식당을 발견하는 기쁨이란....


가끔 친구들이 여행지에서의 식당추천을 해달라고 하면 나는 얘기한다.


-그냥 돌아다니다가 아저씨들 많은 데 들어가. 그게 최고야.


맛이 없는 것을 먹는 것도 미식을 향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때론 맛없는 게 더 기억에 남는다. 맛없는 거 좀 먹으면 어떠랴? 남들이 가는 똑같은 식당을 가는 것보다 나만의 식당을 찾는 게 더 재미있다. 적어도 나에겐...


성북동을 걷다가 들어간 돈까스식당. 인상적인 맛은 없었으나 한 낮에 걷다가 맥주 한잔이랑 먹어서 그런지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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