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명찬 May 05. 2024

아프니까 중년이다

맘대로 아픈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제부터 갑자기 허리통증이 있었는데 자고 나니 옆구리 통증으로 이어졌다. 좀 뻐근한 정도라면 근육통이라 생각하고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면 되겠지만 평소의 통증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예고도 없이 칼로 푹푹 쑤시는 느낌. 심상치가 않았다.


검색을 해보았다.


'갑자기 쑤시는 오른쪽 옆구리 통증'


검색 결과 몇 가지 의견으로 추려졌다.


-근육통

-소화불량

-담석

-급성맹장염

-간염

-대상포진


병원을 가기에는 시간이 일러 (아침 7시였음) 다시 잠을 청했다. 제대로 눕기는 불편했고 몸을 이리저리 꼬아서 누웠다. 아내가 보기엔 그 자세가 보기에 불편했는지 편하게 고쳐 누우라고 했지만 나는 그 자세가 가장 편한 자세였다. 똑바로 누우면 통증이 더 심했다.

다시 일어났을 땐 아내는 이미 거실에 나가 있었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것 같았는데 밥보다는 병원이 우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병원 가는 것을 최대한 미룰 텐데 밥도 마다하고 병원을 가려 집을 나서는 것을 보고 아내는 그제야 심각성을 느꼈던 것 같다.


샤워를 하고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여러 가지 검사가 가능한 동네의 병원으로 걸어갔다. 얼굴에 스킨도 바르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낯빛을 의사가 살필 수 있도록. 평소에도 까만 얼굴이 유독 흙빛으로 느껴졌다.

가는 길에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아직 아플 때가 아닌데, 지금 아프면 도대체 우리 집에 환자가 몇 명이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아프다 보니 걱정부터 됐다. 아픈 게 순서야 있겠냐만은 적어도 지금은 아플 때가 아니다. 걷는 동안에도 옆구리 통증은 계속됐다. 규칙도 없이 갑자기 찌르는 듯한 통증이라 숨이 턱턱 막혔다. 통증 자체보다는 지금 아플 수도 있다는 게 더 겁이 났다.


의사에게 상태를 말하니 초음파로 먼저 체크해 보자고 했다. 진료실을 옮겨 불편한 채로 누웠다. 상의를 올리라고 해서 젖꼭지가 다 드러나도록 바싹 올렸더니 간호가가 실소를 머금으며 얘기했다.


-아니. 이렇게 바싹 올릴 필요는 없고요. 제가 다시 내려드릴게요.


긴장했었다. 물구나무라도 서라면 특별히 토를 달지 않고 열심히 했을 것 같다. 배와 옆구리에 차디 찬 젤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배를 불룩하게 부풀렸다가 숨을 내쉬기를 몇 번 반복했다.


-같이 보실까요?


눈을 감고 있는 내게 의사가 말했다. 고개를 돌려 의사와 함께 흑백의 작은 화면을 보았다. 임산부가 된 기분이었다.


-신장은 깨끗한데요. 담석이 의심돼서 초음파로 살펴보고 있는 거에요. 돌이 있으면 돌 꼬리도 보이곤 하거든요. 그런데 살펴보니 없어요. 그러니 일단 담석이 아닌 걸로 보여요. 그래도 혹시 몰라요. 관 사이에 껴 있을 수도 있으니 약을 드시면서 며칠 경과를 지켜보시죠. 그리고 확실히 보기 위해서 소변검사를 해볼 테니 오늘 소변 검사 하시고 내일 오세요. 검사 결과 보고 다시 얘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적당히 마른 몸, 젤을 발라 단정하게 넘긴 머리, 유행을 타지 않는 금색 안경테, 차분한 말투, 큰 표정 변화는 없지만 입가에 밴 미소. 내과 의사 선생님으로는 완벽한 외모였다. 우선 그를 100% 신뢰해 보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병원에 전화해 봤니?


아버지 병원에 전화해 봤냐고 어제부터 네번째 전화다. 감기에 걸린 아버지 컨디션을 체크해 보기 위해서 본인이 해보면 될 것을 엄마는 어제 아침에 전화를 해서 병원에 미안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닦달하고 있었다. 감기 기운이 하루 만에 확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고열이 나거나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먼저 전화가 오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컨디션이 급하게 궁금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의 컨디션도 그리 좋지 않았고.


-아니 아직 안 해봤어.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병원에서 먼저 전화 올 거야. 걱정하지 마.


-그래도 예전에 병원에서 코로나 걸리고 나서 컨디션이 확 내려갔었잖아. 좀 물어보지 그랬어. 우리가 자꾸 확인해야지. 병원에서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볼 거 아니야.


엄마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조금 울컥해서 하지 말아야 할 얘기를 했다.


-엄마. 나도 지금 병원 다녀오는 길이야. 나도 지금 아파.


엄마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변했다.


-아니. 왜? 어디가? 언제부터? 병원을 왜?


-어제부터 갑자기 옆구리가 푹푹 칼로 쑤시는 것처럼 아파. 담석인 것 같아서 병원에서 초음파를 했는데 일단 돌은 없나 봐. 그래도 혹시 몰라 소변검사했어. 내일 결과 보고 CT 찍을지 말지 결정한데.


-담석? 그거 많이 아프다던데. 어떡하니? 네 아빠도 그걸로 여러 번 고생했었잖아.


-아니. 아직 담석은 아니야. 담석이 의심되는 거지. 내일 결과 보면 확실히 알겠지. 나 지금 통화 힘드니까 엄마 내일 다시 얘기해.


전화를 끊자마자 후회를 했다. 나는 고작 욱해서 엄마에게 걱정거리를 더 얹어버렸다. 집에 오니 아내가 밥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밥 맛이 없었지만 약을 먹어야 하니까 식탁에 앉았다. 병원 결과를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초음파를 했더니 깨끗했다는 얘기만 전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먹으려 노력하면 된다. 그래야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갈 시간을 기다렸다. 너무 일찍 일어났다. 아홉 시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다. CT를 찍을지도 모르니 공복에 오라고 해서 밥을 먹지 못했다. 그래서 약도 먹지 않았다. 몸이 무거웠지만 어제보다는 덜 한 것 같기도 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다. 제법 넓은 병원 접수대 복도에는 사람들이 이미 가득했다. 대부분이 어르신들이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오픈 런을 했을 생각을 하니 놀라웠다. 40분 정도 기다려 이름이 불렸다.


-소변 검사 결과 염증도 없고 단백뇨도 없고 혈뇨도 없고 깨끗합니다. 담석으로 의심되지 않아요. 그래도 통증이 있으시니까 약 잘 드시면서 체크해 보세요. 약을 드셔도 경과가 없다 싶으면 빨리 병원으로 오시고요.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다. 일단 지금 아프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병원을 나서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것도 아니래. 깨끗하데. 근데 우리 오늘 아침 뭐 먹어? 동태탕집 지나고 있는데 1인분 포장해 갈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내와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어제부터 눈치를 보며 전화를 하지 못했을 게 뻔하다.


-병원 다녀왔는데. 아무것도 아니래요.


-다행이네. 근데 왜 아팠을까?


-근육통 같은 걸 수도 있지. 몸살이나.


-그래. 다행이다. 요즘 장사도 안되니까 네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더 그럴 거야.


엄마를 안심시키고 나니 이제 아내를 안심시킬 차례다. 집에 가서 포장해 온 동태매운탕을 끓여 아내와 밥을 먹었다. 아직 옆구리가 뻐근하긴 하지만 평소보다 밥을 더 맛있게 먹을 생각이었다.

한 술을 떴다. 무조건 맛이 있을 예정이었다.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훑으며 내려갔다.

맛있었다. 진짜로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푹푹 쑤시던 허리 통증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다.






이전 16화 여행하기 가장 편한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