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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Jun 25. 2024

우울한 날들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시간

봄부터 슬슬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6월이 되니 말도 안 되게 손님이 없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노후를 위해 10년 넘게 모아두었던 연금보험을 해약하고 몇 년 간 꼼짝없이 존버하고 있었던 투자 금액도 손해를 보고 처분했다.


허무했다. 이게 다 장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흔에 들어서며 직장을 관뒀다. 월급쟁이일 땐 그래도 먹고 싶은 거 먹고, 주말마다 여행도 다니고 때마다 해외여행도 빼놓지 않았다.

장사를 시작하고 4개월 만에 코로나가 터졌다. 조금씩 단골손님이 늘고 있을 때였는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쉬고 아침 8시에 나가 밤 12시에 들어왔다. 하루를 꼬박 가게에서 일을 해도 직장을 다닐 때 보다 벌지 못했다. 그때 인정했어야 했는데,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코로나만 버티면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땐 얼마나 버느냐가 목표가 아니고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하루종일 일을 하면서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목표인 삶이기에 희망이 없었다. 어찌 됐든 나가야 하니까 눈물을 머금고 나가 집으로 오며 눈물을 훔쳤다. 그때의 삶은 너무 버거웠다. 내가 필요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으니까.

화가 나는 건 손을 놓고 있는 정부였다. 코로나 확산을 막아야 한다며 영업시간제한을 강제로 시켜놓고 그에 따른 지원금은 매출에 따라 차별해서 지원했다.


지원금을 책정할 때 코로나 이전 연도의 매출과 비교를 해서 코로나 시기의 매출이 더 높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나의 경우가 정확히 그랬다. 2019년 10월에 오픈을 했으니 2019년은 3개월 동안만 장사를 한 것이고 게다가 초반이었으니 매출이 높지가 않았다. 장사는 적어도 6개월은 씨를 뿌리는 시작이 필요하다. 그 후에 얼마나 많은 재방문 손님을 확보하냐가 매출의 높낮이로 이어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코로나 이전 매출이 코로나 때보다 평균적으로 낮지 않다는 이유로 보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때 매출이 실제로 높았느냐? 당연히 아니다. 한 달 꼬박 일을 하고 가져가는 액수는 백만 원이 채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속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지인들은 위로를 한다는 투로 '지원금이라도 나와서 다행이다'라고 얘기했다. 매스컴에서 자영업자를 위한 특별 지원금을 풀 것이라고 쉴 새 없이 떠들었기 때문에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나하나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뭐'라고 체념하며 대답했다.


지인들에겐 처연하게 넘기면서도 지원금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화가 나서 반박하고 싶었다.


'자영업자만 국민이냐'

'또 자영업자만 구제하냐'

'자영업자는 가만히 놀면서 돈 받아서 좋겠음'

'월급쟁이만 손해 보는 대한민국'


처음에는 자영업자에 대한 불만이 나중에는 공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할 일없어서 장사나 하는 것들이 나라 살림 다 축내네'라는 말이 늘어나기 시작할 땐 억울해서 '나는 보상금 한 푼도 안 나왔어요'라고 가게 앞에 현수막을 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언발의 오줌누기'식으로 지원한 금액은 지원이 아니고 대출이었다. 정부는 전국의 자영업자를 빚쟁이로 만들었다.


어쨌든 이런 시기를 지나 코로나의 시대가 일단 끝이 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종종 보이던 마스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를 벗으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동안 움츠려 들었던 경제가 살아나며 소비의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 많은 경제학자들이 예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색해지고 만나는 게 귀찮아졌다. 밤 10시가 되면 헤어지는 게 익숙해졌고 출출한 새벽에 편하게 찾았던 24시간 식당은 이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가 힘들다.


코로나의 시대가 끝나고 불황의 시대다. 얼마 전 아내와 가게 운영 문제로 다툼을 했다. 서로 손을 잡고 이겨내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말을 하지 못한 불만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웬만하면 웃고 넘어가던 우리는 그날, 참지 않았다. 지난 얘기를 꺼내며 서로의 잘못을 들췄다. 싸우면 오래가지 못하는 성격들이라 그날 풀기는 했지만 나는 우리가 그렇게 싸울 수도 있다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


결국 그 말이 나왔다. 돈이 없으니 우리도 싸우게 된다고.


매일 쫓기며 살고 있다.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고 고마움에 쫓기고 미안함에 쫓기고 양심에 쫓기고.....

천천히 관조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이미 벗어난 지 오래다. 아파트 대출금도, 부모님 병원비도, 가게 임대료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가.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고민이다.





덧붙임.


멍해져 버려서 열심히 쓰던 일기도 한동안 쓰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말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루가 다 똑같은 것 같기만 해서 쓰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걷고 뛰었다. 뛰다가 걷고.

맘은 잘 잡히지 않지만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니 아주 조금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글쓰기가 좋은 것 같다. 그나마 나를 차분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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