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침에 평소보다 많이 걸었다. 집에서 출발해서 안양천을 따라 걷다가 고척돔이 바로 보이는 사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구로역을 지나 신도림역까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평소에 주로 걷던 길을 벗어나 조금 돌아 걸은 것뿐이다.
종아리가 욱신거렸다. 며칠 전 새해 일출을 본다고 방한화를 신고 오래 걸은 게 문제였던 것 같다.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걷기 불편한 신발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 걸을 것 가지고 이렇게 종아리가 아플까 싶다. 새해가 밝았다.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조금 더 늙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종아리가 조금 뻐근한 것 가지고도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한 시간 정도 쉬지 않고 걸었다. 구로 공구 단지를 따라 걷다 보니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몇몇 보였다. 식당 이름을 검색했다. 그리고 저장했다. 올해 안에 한 번 정도는 가지 않을까?
디큐브시티가 가까워졌다. 대로를 따라 걸을지 골목으로 들어가 걸을지 고민하다가 느닷없이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신도림역에 모셔다 드린 적이 있다. 역에 내려 드리며 마음이 편치는 않았는데 평소보다 공손한 말투로 '잘 가시라'는 말을 건넸다. 아버지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문을 닫고 신도림역 계단을 올랐다. 아마 들었는데 못 들은 척했을 것이다. 자기를 집까지 데려다주지 않아서 서운했을 것이다. 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맘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다. 적당히 맞춰주고 적당히 거절한다. 그게 내가 아버지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날도 그랬다. 기억이 정확히 나지는 않지만 그날은 내가 모셔다 드리지 못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한 번쯤은 겪어야 하는 거절이었고 그에 따른 신경전이었다. 오히려 나는 아버지가 먼저 '지하철 타고 앉아서 편하게 가면 되는데 뭣하러 왔다 갔다 하니?'라고 얘기해 주길 바랐다.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런 말을 내뱉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날의 신경전은 잊힌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는 어떤 기억이 있고 또 어떤 기억은 없다. 그날은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잊어주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들렀다가 돌아올 때면 늘 마음이 씁쓸하다. 면회를 마치고 헤어지는 인사를 할 때마다 아버지의 반응은 다른데 어떨 때는 몇 시간만 지나면 다시 올 사람처럼 일상적인 인사를 나누고 어떨 때는 그때 헤어지면 몇 년간 보지 못할 사람처럼 대하며 나를 가지 못하게 막는다.
최근에도 그랬다. 갈 시간이 돼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아버지가 자꾸 말했다.
-어디 가려고 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여기 있어. 여기 옆에 침대 비워주라고 하고 있으면 돼.
-아빠. 나 가서 또 일하고 해야지. 그래야 아버지 병원비도 내고, 퇴원하면 아버지가 좋아하는 장어도 사주지. 그러니깐 가봐야 해.
-여기. 나한테 병원비 달라고 한 적 한 번도 없어. 그냥 있어도 되는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너도 여기 있어. 옆 침대 비워달라고 하면 된다니까.
자신한테 병원비를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죽여 얘기하는 아버지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고 아주 묘한 이끌림에 의해 아버지를 꼭 안았다. 아버지의 귀와 나의 귀가 맞닿았고 나는 말했다.
-아버지. 금방 또 올게요. 밥 잘 챙겨 먹고 선생님들 말씀 잘 듣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해요. 내가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아버지 운동 잘 하시나 매일 물어볼 거야.
아버지는 체념한 듯 나의 등을 툭툭 쳐 주었는데 부상방지용으로 싸놓은 아버지의 손싸개 때문인지 등에 닿는 느낌이 뭉툭했다. 아버지에게 파고들듯 더 꼭 안으며 귀에 대고 말했다.
-아버지. 사랑해.
볼에 입을 맞추고 아버지에게 안겨 겨우 눈물을 참고 있는데 아버지의 뭉툭한 손이 나의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는 여전히 아버지가 보호자라는 것을....
아버지가 아프고 나서 많은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이제는 아버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에,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가 돼야 한다는 마음에.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안기고 기댈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여전히 그의 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