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 가셨어요?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계셨던 병원에 다녀왔어요. 여러 가지 서류가 필요했거든요. 아버지의 병세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던 의사를 만나보고도 싶었고요.
기대하진 않았지만 역시 건조하게 말하더군요. 의사가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것도 자신이 주치의로 있던 환자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의미 없이 말할 수 있다니….
화가 날 지경이었어요. 그때 그 사람은 분명히 아버지가 좋아지고 있다고 했으니까요.
그 사람의 말과 달리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지 누가 알았겠어요? 그러니까 아무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죠. 아마 평생 맘 한구석에 걸려 있겠죠.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말이에요.
아버지가 떠난 지도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지났어요.
그 사이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를 지내고 왔지요. 다 지켜보셨죠? 엄마하고 동생하고 손을 잡고 상을 잘 치렀어요. 빈소 앞에 줄지어 있던 근조도 보셨나요? 아들들이 그래도 잘 살아왔어요. 많은 분들이 빈소를 찾아주셨으니 말이에요.
얘들도 보셨죠? 얘들이 아버지 하고 약속 지키러 왔어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얘들한테 말씀하셨잖아요. ‘너희들이 내 관짝 들 놈들이구나!’라고 말이에요. 그땐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었는데 마침내 사실이 돼버렸네요.
기분이 어떠세요? 홀가분하세요?
우리와 떨어져서 슬프세요? 아니면 그렇게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부모님을 만나서 반가우세요?
아버지보다 너무 빨리 하늘에 가버려서 항상 아쉬워하던 아버지의 술친구 승만아저씨와 벌써 한잔 하신 건 아니겠죠?
어찌 됐든 좋아요. 아버지가 좋다면 말이에요.
아시겠지만 저는 시시때때로 울고 있어요. 아버지가 보셨다면 ‘아버지 괜찮아. 그러니 울지 마.’라고 말씀해 주셨을 것 같아요. 그 말투가 기억나요. 언젠가 저에게 그렇게 말해주셨잖아요.
어제는 일찍 눈을 떠서 영화를 봤어요. <원더풀 라이프>라는 일본 영화였어요. 아버지는 절대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영화죠. 저는 그 영화에 대해 대충 알고 있었어요. 감독이 제가 좋아하는 감독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려고 하면 봐지지가 않은 거예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자꾸 미루게 되는 것.
그런데 어제 드디어 보게 됐어요. ‘지금이다.’ 싶었어요.
영화를 보면 하늘로 떠난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어느 공간에 모여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요. 그리고 그 순간을 다시 한번 재현하고는 미련 없이 현생을 떠나게 되죠.
아버지가 떠난 지 일주일 하고 하루가 지났는데 영화대로 라면 아버진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다시 한번 맞이하고 미련 없이 떠났을 텐데….
궁금하네요. 아버지가 가장 행복했던 때 말이에요. 보나 마나 큰 일은 아닐 거예요. 아버진 워낙에 작은 일에 크게 웃는 사람이었잖아요.
영화를 보고 나서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그렇게 빨리 꿈에 찾아오실 줄은 몰랐어요.
언덕에 병원에 있었고 저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죠. 불안한 걸음걸이지만 아버지는 조금씩 걸었어요. 저의 팔을 꼭 잡고 계셨죠. 택시를 타야 하는 대로까지는 내리막길이 가파르게 이어졌어요. 그런데 그 길에 이불홑청 같은 부드러운 천이 깔려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아버지와 제가 손을 잡고 미끄럼을 타면서 신나게 내려왔잖아요. 그때 전 생각했어요.
아! 이제 퇴원을 하고 아버지를 집에서 모실 수도 있겠구나.
큰길로 내려와 택시를 타려는데 잠이 깼어요.. 잠을 깨어도 어찌나 꿈이 생생하던지. 그런데 상황은 정확하게 기억나는데 아버지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나는 거예요. 말씀을 하신 것도 같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곧 다시 한번 꿈에 찾아와 주세요. 그땐 아버지 얼굴만 뚫어지게 보고 있을게요.
아버지.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2년 동안의 기억은 없으시겠죠? 그때의 저는 그전과는 다르게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고 반말도 하고 얼굴도 비벼대고 포옹도 자주 하고 뽀뽀도 하고 심지어는 사랑한다고도 말했는데 말이죠.
아버지가 아프시고 난 다음에야 아버지와 더 친근하게 지낸 것 같아요. 왜 그랬을까요?
앞으로가 문제예요. 아버지를 생각만 해도 그 자리에서 울어버릴 것 같아요. 며칠 전에도 아버지가 드셨던 약을 정리하다가 이제는 그 약을 드시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만 왈칵 눈물이 나더라니까요.
벌써 그리워서 큰일이에요.
밤이 되면 더 그래요. 자꾸 울면 아버지 속상할 텐데 제 맘대로 안 되네요.
사십구재 때 아버지가 좋아하는 서대매운탕하기로 했어요. 아버지가 아끼고 아꼈던 인삼주도 딸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 진짜 많이 드시고 가셔야 해요.
사랑해요.
이 자연스러운 말이 왜 그렇게 입 안에서만 맴돌았을까요? 죄송해요. 아니 사랑해요. 그리고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벌써…..